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클래식TALK] 두 가지 '듣기'

뉴저지에 살다가 9년 만에 다시 뉴욕으로 이사를 했다. 새로운 동네에 대한 기대와 변화가 가져오는 적당한 긴장감은 삶의 활기를 가져다 준다.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 이사를 결심한 이유들 중에는, 안전하고 주변 환경이 괜찮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도 다양해졌다. 집 앞에는 작은 슈퍼와 도서관이 있고, 파출소가 있어서 안전요원들이 수시로 드나든다. 창 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길 건너편에는 벽돌로 지어진 작은 교회가 있는데 차분한 동네를 잘 닮았다. 걸어서 3분 거리에는 산책로와 우체국 그리고 대형마트도 있으니 이 정도면 꽤 괜찮다.

그런데 집 안에서 휴대폰 신호가 거의 잡히지 않는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 찾아왔다. 또한 집 앞 왕복 2차로에서 창문을 뚫고 들려오는 자동차 소음에 적응해야 하는 단점도 생겼다. 건물 3층이라 지나가는 버스나 공사 차량의 소리가 꽤나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편이다. 지난 9년을 살았던 곳의 옆집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게임을 즐기던 파일럿이 살고 있었는데, 대략 한 달에 절반 정도는 집을 비워서 조용했지만, 그렇지 않은 시기에는 벽을 울리는 소음이 꽤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웃에게 얼굴을 붉히는 대신 침실 머리맡에 둔 귀마개를 친구 삼아 잠을 청했어야 했다.

최근 아내는 직장에서 새로 옮긴 자리 근처에서 맹렬하게 돌아가는 에어컨 소리 때문에 클라이언트들과 통화가 어려울 지경이라고 토로한 적이 있다. 실제 소리가 크기도 하겠지만 유독 민감한 귀를 가진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생활소음에는 둔감한 필자는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벽시계의 초침 소리나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에는 큰 방해를 받지 않는 편이다. 소리에 예민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든 음악가가 그런 것은 아니라는 사실.

음대 수업 중에는 청음이 있는데, 전공분야나 학위의 정도에 따라 수준은 다르겠지만 연주되는 선율을 듣고 악보에 옮겨 적는 기본적인 수준에서부터,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선율을 동시에 듣는 역량을 요구하기도 한다. 어떤 학교의 입시에는 현악사중주단이 시험장으로 들어와 라이브로 연주하는 음악을 듣고 악보에 받아 적어야 한다. 이런 종류의 청음 시험은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반복되는 연습과 경험이 필요하다. 뛰어난 귀를 가진 지인은 피아노에서 무작위로 연주된 9개의 음정을 순서대로 읊어내는데 음색이 동일한 한 악기에서 이렇게 구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청음 수업처럼 음을 맞추는 '절대적 듣기'가 기본이라면, 귀로 전달된 소리들이 악보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이상적인 조합으로 구현되도록 조정하는 '구조적 듣기'는 전혀 다른 차원의 중요성을 가진다. 야구에 비유해 보자. 투수에게는 언제든지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스트라이크를 잘 던지는 선수를 원하지 않는다. 유능한 투수란 아웃카운트를 잘 잡아내는 선수이다. 여러 유형의 타자를 상대로 다양한 구종과 구속으로 두뇌 싸움을 하고, 때로는 스트라이크가 아닌 유사구를 던져 헛스윙을 유인한다. 그리고 팀 동료들의 수비를 믿고 병살타를 유도하는 경기 운영능력을 갖춘 투수가 결국 훌륭한 선수로 평가 받는다. 이처럼 '구조적 듣기'의 역량은 리허설 현장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연주를 듣고 어떤 부분을 어떻게 보완해야 더 좋아질 것인지를 판단하는 현실적인 근거가 된다.

유명 지휘자 데이비드 로버트슨은 젊은 지휘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은 절대 음감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어떻게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올 수 있었는지를 진솔하게 소개했다. 실제로 높은 반열에 오른 대가들은 탁월한 '구조적 듣기'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는 예술성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이자, 영감의 근원이다.


김동민 /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