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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역사의 미아가 된 김원봉

#. 미국 역사에서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재임 1829~1837년)만큼 논쟁적인 인물도 없다. 논쟁적이란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쪽에선 찬사와 존경을 받지만 다른 한쪽에선 비난과 질타도 쏟아진다는 말이다.

'인디언 토벌 작전'에서의 대활약으로 명성을 떨친 청년 잭슨은 영미전쟁(1812~1815)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여세를 몰아 정치에 입문, 한 번 고배를 마셨지만 결국 대통령까지 되었다. 1~6대까지 대통령은 모두 동부 명문가 출신이었다. 잭슨은 그것을 뛰어넘은 최초의 비동부 서민 출신 대통령이었다. 부패와의 전쟁을 이끌며 연방정부 재정을 튼튼히 했고 외교 수완도 탁월했다. 뿐만 아니라 모든 백인 남성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등 대중 민주주의의 새 길도 열었다. 트럼프를 비롯해 지금도 많은 백인들이 그를 추앙하는 이유다.

하지만 잭슨은 극렬 인종차별주의자였다. 원주민 소탕전을 지휘하며 무자비한 집단학살 명령을 서슴지 않았다. 대통령이 된 후엔 '인디언 이주법'을 제정해 미시시피 강 동쪽에 살던 4만5000여명의 원주민을 아칸소와 오클라호마의 보호구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그 '눈물의 길'에서 4000명이 추위와 굶주림,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는 미국 역사에서 인종 간 편견과 갈등의 씨앗을 뿌린 장본인이었다. 그럼에도 잭슨은 굳건하다. 전국 곳곳에 동상이 세워졌고 20달러 지폐 모델로도 매일 미국인들을 만나고 있다(오바마 대통령 때 20달러 지폐 모델을 흑인 인권운동가 해리엇 터브먼으로 바꾸기로 결정했지만 트럼프 집권 이후 흐지부지 됐다).



#. 식민지를 거치고 분단의 시대를 지나고 있는 한국 역사에는 잭슨보다 더한 논쟁적 인물이 수두룩하다. 어떤 빼어난 인물이어도 친일과 반공이라는 잣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 온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친일은 나은 편이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가난해도 친일파 후손은 떵떵거리며 산다는 말처럼, 친일 당사자나 그 후손들 중엔 여전히 활개치며 사람이 많다. 하지만 반공 앞에선 예외가 없다. 한 번 '빨갱이'로 낙인찍히면 그것으로 끝이다.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연설로 논란이 된 '김원봉'도 그렇다. 그는 영웅적인 항일독립투사였다. 하지만 해방 공간에서 북으로 감으로써 우리에겐 난감한 존재가 됐다. 김원봉이라는 이름은 남북한 모두에서 지워졌다. 남에서는 김일성 정권에 복무했다는 이유로, 북에서는 반사회주의 반동분자로 일찌감치 숙청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황장엽(1923~2010)은 운이 좋은 사람이다. 김일성 주체사상의 기획자로 평생을 살았지만 1997년 남으로 내려온 덕에 대한민국 1등급 훈장도 받고 국립묘지인 대전 현충원에까지 묻혔다. 분단의 모순이자 우리 역사의 딜레마다.

문 대통령이 역사적 미아가 된 김원봉을 소환한 뜻은 이해할 수 있다. 대통령으로서 식민과 분단이 만들어낸 우리 안의 이념적 분열을 봉합하기 위한 상징으로 그를 택한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1200만 명이 영화를 보고 김원봉에 박수를 쳤다고 해서 반공의 틀을 걷어내도 좋다는 사람까지 1200만 명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문 대통령은 놓쳤다. 더구나 우리는 아직도 미국처럼 공(功)은 공으로, 과(過)는 과로 분리해서 생각할 만큼 너그럽지도, '쿨' 하지도 못하다.

여론의 벽에 부딪쳐 김원봉 서훈 논란은 결국 없던 일이 됐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앞으로도 꽤 긴 시간 논쟁거리로 남을 것이다. 다만 한 시대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민족주의자를 한 두 마디 얻어들은 정보로 쉽게 재단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이종호 논설실장 lee.jongho@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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