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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TALK] Excuse me가 불러온 참사

2016년 초 인천공항을 출발해 필리핀으로 향하던 비행기가 2시간여 만에 되돌아오는 일이 있었다. 당시 탑승하고 있던 260여 명의 승객들은 자세한 영문도 모른 채 비행기의 안전을 위해 큰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다. 나중에 회항 이유를 알고 보니 출발 전 비행기 앞바퀴를 고정시켜 둔 핀을 빼지 않은 채 이륙했는데, 이 때문에 바퀴를 접어 넣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바퀴를 내놓은 채 비행을 지속할 경우 랜딩기어의 무리로 착륙 시 위험할 수 있다. 작은 핀 하나를 제거하지 않은 정비사의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빚어낸 일이었다.

운동 경기에서도 황당한 실수로 생긴 일들이 종종 벌어진다. 수십 킬로미터를 달려온 사이클 선수가 마침내 결승선을 통과하며 양손을 들어 승리를 만끽하던 순간, 그 뒤를 달려오던 2위 선수에게 1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선두로 달리던 선수가 주최 측이 만들어 둔 결승선 입구를 골인 지점으로 착각했고, 속도를 높여 그 뒤를 따르던 2위 선수가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것이었다. 압도적인 기량으로 레이싱을 펼치던 스피드 스케이트 선수는 경기 도중 팔에 고정하는 암 밴드가 흘러내리자 중도에서 빼내 던져버렸다. 그런데 주최 측은 1위를 기록한 이 선수에게 실격을 선언했다. 대회 규정상 경기 중 암 밴드를 고의로 빼는 것을 금지하기 때문이었다.

최근 러시아에서 막을 내린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생긴 일이다. 중국 출신의 피아니스트 안 타인슈는 본선 1, 2차 라운드를 통과해 파이널 무대에서 연주하는 일만 남겨두고 있었다. 그가 연주할 마지막 두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과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이었다. 지휘자와 피아니스트가 청중들의 박수를 받으며 무대 위에 올랐다. 그가 자리를 잡은 것을 확인한 후 지휘자의 바통이 빠르게 움직였고, 오케스트라는 그대로 반응했다. 아뿔싸, 그런데 안 타인슈가 첫 도입부를 놓치고 말았다. 콩쿠르에서는 치명적인 실수이다. 게다가 파이널 무대가 아닌가. 카메라는 이 당혹스러운 순간을 담고 있었는데, 안 타인슈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 순간 안 타인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었을까? 어떻게 수천 번을 연습하고 연주했을 첫 부분을 놓치는 어이없는 일이 있었을까? 그리고 그는 왜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지휘자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연주 실황을 인터넷으로 실시간 중계했던 영상에서 그 이유를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경연 직전, 안 타인슈가 백스테이지에서 대기하는 동안 아나운서는 영어와 러시아어로 피아니스트를 소개하며 연주할 곡목을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로 안내했다. 무대 뒤에서 듣고 있던 안 타인슈는 이를 '차이코프스키에 이어 라흐마니노프'로 이해했다. 그런데 반전은 ….. 부분이었다. 첫 곡으로 라흐마니노프를 이야기했어야 했는데 아나운서의 실수로 차이코프스키라고 먼저 말한 것이다. 그러니까 "첫 곡은 차이코프스키, 아… 죄송합니다… 라흐마니노프입니다." 중간에 러시아어로 덧붙인 'excuse me'를 중국인 피아니스트가 이해했을 리가 없다.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은 오케스트라 도입부가 5마디로 피아니스트에게는 연주 시작 후 약 10초 정도 준비할 시간이 생긴다. 반면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광시곡'은 솔로 전 도입부가 1마디뿐이기 때문에 1~2초 차이로 쏜살처럼 피아노가 강렬하게 등장해야 하는 곡이다. 차이코프스키를 기대하며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여유 있게 기다리던 그가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원래 차이코프스키를 먼저 연주하는 것으로 약속되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대회 측은 지휘자, 오케스트라, 심사위원에게 변경된 순서를 알린 반면, 정작 안 타인슈에게는 바뀐 순서에 대해 양해조차 구하지 않았다. 세계 최고 권위의 콩쿠르를 발칵 뒤집어 놓은 이번 사건은 아나운서를 해고하고 안 타인슈에게 애초 계획에 없던 특별상을 만들어 수여하는 것으로 봉합되었다.


김동민 /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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