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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TALK] 인생도 음악처럼

올해 초, 한 유명 오페라 가수의 앨범 제작에 참여했다. 녹음이 지난 1월이었으니 벌써 8개월 가까이 흘렀다. 실제 음반은 9월 말쯤 출시 예정이란다. 예전에도 다양한 종류의 녹음에 참여한 적이 있었지만, 상업 음반은 처음이라 후반 작업에 이 정도로 많은 시간이 들어가는 줄은 몰랐다.

엄밀하게 보자면 나와 NYCP는 제작자에게 단순 고용된 것이고, 녹음에 필요한 오케스트라 연주 서비스만 제공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가수와 함께 편곡자와, 리코딩 엔지니어 그리고 프로듀서를 선정하는 일부터 관여했으니 처음부터 팀 빌딩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말할 수 있다. 가수의 뉴욕 체류 기간에 맞춰 오케스트라 멤버를 확정해 리허설 스케줄을 잡았고, 프로듀서와 함께 가장 합리적이고 시간과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녹음 일정을 가수에게 제안하기도 했다.

시중에 발매된 클래식 음반 가운데, 라이브 실황이라고 나온 앨범의 거의 대부분은 연주 후, 재녹음과 부분녹음을 통해 수많은 패치들을 확보해 두고 나중에 필요한 부분에 덧입히는 과정을 거친다. 라이브가 주는 현장성을 가지면서도 기술적인 완성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연주력이 어느 정도 확보된 아티스트가 시도해 볼 수 있는 옵션인데, 스튜디오 녹음에 비해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여지가 적은 편이다.

그런데 성악은 기악 녹음과는 달리 오랜 시간 매달릴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강철 성대를 가진 사람이라도 수 시간을 연속해서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정신력의 문제가 아니라, 체력 문제다. 피아노를 써서 녹음을 한다면 조금 더 수월하겠지만, 여러 명의 연주자가 참여하는 녹음은 거의 대부분 오케스트라만 먼저 녹음해 반주 음원을 확보한 다음, 성악가가 녹음 부스에 들어가 헤드폰에 나오는 반주에 맞춰 노래한다. 후반 작업의 효율성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체력 안배의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녹음해야 하는 곡이 총 12곡이었는데, 하루에 3시간, 이틀에 나눠 6곡씩 녹음해야만 했다. 산술적으로 한 곡당 부여된 시간이 30분인 셈이다. 세계 최고 권위의 콩쿠르에서 우승한 성악가가 5분짜리 곡을 녹음하는데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냐고 말한다면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다. 각 곡마다 악기 편성이 조금씩 달라 이에 따라 마이크 위치, 무대 셋업을 변경하는데 소요되는 최소한의 시간만을 빼더라도, 노래할 수 있는 횟수는 기껏해야 3 테이크 정도에 불과했다. 일반적으로 한 곡당 20~30 테이크 가량 녹음하는 것과 비교하면 비현실적인 숫자이다. 가수도 사람인지라 노래하면서 실수가 생기기도 하고, 중간에 오케스트라 연주자가 틀린 음을 내기도 한다. 녹음을 도와주러 온 헬퍼의 발자국 소리가 들어가는 어이없는 일도 벌어진다. 테이크가 많아야 좋은 부분만을 골라 편집할 수 있는데 그런 기회가 극도로 제한되는 셈이다.

집에서 사용하는 냉장고를 스튜디오로 옮겨와 그 안에 있는 재료만을 사용해 유명 세프들이 요리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어쩔 때는 레스토랑 수준의 고급 식재료를 갖춘 냉장고 주인이 출연하기도 하지만, 정 반대의 경우에도 훌륭한 요리를 기적처럼 완성해 내기도 한다. 서너 개의 테이크를 가지고 수개월의 의견 교환과 수정 과정을 거쳐 이제 최종 마무리 단계에 왔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함께 도착한 파일을 내려받아 늦은 밤 헤드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었다. 곳곳에 그때 그 현장이 숨 쉬듯 되살아났다. 비어있던 냉장고에서 산해진미가 탄생하듯,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최선을 이루어냈다는 보람과 감동이 전해졌다. 일말의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알고 보면 인생도 음악처럼 아쉬움과 감격을 함께 보듬으며 지나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김동민 /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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