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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한국을 공격하는 일본

1982년 우연히 한 대학생의 시집을 읽었다. 등사기로 인쇄해 묶어낸 지하 시집의 한 구절은 이랬다. "우리 기술, 우리 자본, 우리 지하철 공사에 미쓰비시 기계가 한반도의 흙을 판다."

1988년쯤 동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교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유학 시절 일본 학생이 룸메이트였는데 1년 동안 세계 여행을 하고 왔다는 거야."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우린 군대에 가야 하니까…. 그렇게 전 세계를 여행한 경험이 일본 기업의 수출에 큰 힘이 된다네."

1990년께 일본에 자주 가던 선배에게 들은 말이다. "일본에는 일본어를 네이티브 스피커 수준으로 하는 외국인이 3만 명쯤 돼." 당시 일본 TV에는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는 외국인 출연자가 흔했다.

2019년 일본이 반도체 핵심 부품의 한국 수출 규제를 선언했다. 수출입 규제는 경제적 봉쇄 정책이다. 강력한 적대 행위다. 수출입 규제는 압도적 경제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실행에 옮길 나라는 많지 않다. 미국이 옛 소련과 쿠바, 북한 타격에 사용했다. 중국은 최근 한국, 일본, 노르웨이 등에 적용했다. 미국식은 국제 공조 형식이어서 명분과 파괴력이 앞서고 중국식은 단독 보복이어서 신속하다.



지금까지 미국에 협조하는 수준에서 무역을 규제하던 일본이 단독으로 한 국가를 공격한 데서 굴복시키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일본이 한국을 압도하던, 그러니까 미쓰비시 기계가 한반도의 흙을 파던 시절이라면 일본은 뜻을 관철했을 수 있다.

지금은 다르다. 이제 한국 대학생은 군대도 가지만 넘치게 해외여행도 간다. 심지어, 일본 가는 한국인이 한국 가는 일본인보다 2배 넘게 많다. 한국에도 한국어를 네이티브 스피커만큼 구사하는 외국인이 많고 TV에는 한국말 하는 외국인 출연자가 흔하다.

한 국가가 가진 힘은 결국 일상으로 드러난다. 해외여행과 외국인 거주자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결국 그 나라의 경제력과 국제적 수준을 드러낸다. 돈과 시간이 없으면 해외여행 못 간다. 나라가 잘 살고 매력이 있어야 외국인이 자발적으로 말을 배워 그 나라에 산다. 이 두 가지만 봐도 일본의 공격이 성공할까 싶다. 그런데도 공격을 선택했을 때는 절박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일본은 패전 이후 미국의 세계 전략에 적극적으로 순응하며 성장했다. 패전 이후 그렇게 열심히 야구를 한 것은 전후 일본의 전략을 상징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시아에 서구 문물을 도입하고 서구에 아시아를 알린 선도적 지위와 발언권을 이용해 전범국 이미지를 지우고 피해자 이미지를 그렸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는 전쟁이 가능한 개헌에 속도를 내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까지 성사시켰다.

일본의 전후 성공 모델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반도는 대결에서 대화로 급반전했다. 미국은 중국을 적으로 규정하며 경제 공격에 나섰고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며 중국의 절대 가치인 '하나의 중국'을 흔들었다. 동북아시아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 없이 변하는데 일본은 영향력은커녕 변화를 따라가기도 벅차 보였다.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도 아예 몰랐던 것 같다. 게다가 전쟁범죄의 현장 증거인 위안부와 강제노역은 꾹꾹 덮었다고 믿었으나 다시 살아났다.

일본이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동아시아의 전환에 대응하려면 적어도 한국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해야 한다. 미국과 공조하면 최선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남은 것은 한국에 대한 단독 공격이었을 것이다. 현재까지 공격은 성공적이지 않다. 한국은 지소미아 종료로 반격했다. 그렇다고 일본의 공격이 반도체 타격이라는 첫 물결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목표는 주도권 회복이기 때문이다.


안유회 논설위원 ahn.yoohoi@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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