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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아래서] 교회가 가진 뻔뻔한 힘

한성윤 / 목사·나성남포교회
한성윤 / 목사·나성남포교회

[LA중앙일보] 발행 2019/10/01 종교 23면 기사입력 2019/09/30 19:14

밤이슬이 차다. 찬 이슬을 맞은 어깨가 놀란 듯 떨지만 움츠리는 것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마음이 춥다.

아무리 팔은 부러져도 소매 안에 있다고 하지만, 어찌 그토록 교회를 아프게 하고도 칼조차 대지 못한 수술을 서둘러 봉합해야 했는지, 아니 할 수밖에 없었는지… 세습은 안 된다고 외쳤지만, 우리 교회는 아니라는 소리를 잠재우지는 못했다.

법과 절차를 따랐으니 승계이지 세습이 아니라는 말은 말이야 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손바닥은 하늘을 가리라고 준 것이 아니다. 세습이란 말은 아들이 아버지를 따라 헌신의 길을 걷는 것을 반대해서 나온 것이 아니다. 따져 보면 교회가 가진 것이 너무 많아서 나온 말이 아닌가. 어쩌면 세습을 막았다고 해도 가장 무서운 병마는 계속 자라날지도 모른다. 얼굴만 다른 욕망이 그 자리에 앉을 수도 있다. 이제 이렇게 덮어버린 병마는 어떻게 자라나 얼마나 온몸을 아프게 할 것인가. 종교 개혁 이후로 교회는 핍박을 받았고 영적인 침체를 경험하기도 했으며, 교회가 비어가던 시절은 경험했지만, 가진 것이 너무 많고 힘이 남아돌아 걸린 병과는 싸운 경험이 거의 없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없는 법도 만들어 교회를 지킨다고 말할 만큼 뻔뻔한 힘을 가졌다.

그러나 환자인 교회를 지킨다고 병실 앞을 막다가 의사조차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면, 환자는 살았으나 죽은 것이다. 더 힘든 일은 환자가 자신은 멀쩡한데 왜 의사가 필요하냐고 떼를 쓰는 것이다. 건강한 자라고 우기는데 의사가 쓸데없지 않은가. (마태복음 9:10-13)

욕심은 은밀하고 죄는 달콤하다. 숨어 있어서 은밀한 것이 아니라 숨길 수 있기에 은밀하다. 그래서 사람 앞에서 부덕의 소치라며 숨기보다는 죄인으로 주님 앞에 서야 한다. 주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신다. 그리고 주님은 죄인을 사랑하신다.

찬 이슬도 따사로운 아침 햇살에 스러진다. 우리가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사랑이다. 시퍼런 칼끝처럼 싸늘한 눈길에도, 메마른 모래만 손에 잡히는 건조한 말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교회는 사랑을 놓을 수 없다.

사랑 안에서 진실을 말한다. 그리고 사랑은 오래 견디며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다. 빛은 어둠과 사귀지 못한다. 어둠은 벗어야 하며, 빛은 입어야 한다.

sunghan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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