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에 칭찬과 존경 등 응보가 따르는 것은 마땅하다. 그러나 그것을 동기나 목적으로 한 선행은, 종교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
들머리 말씀은 습관이 된 은밀한 선행을 권면한 것이라 하겠다.
선행의 심리적 배경에 어떤 동기나 방향성도 배제된 무심한 선행, 그것이 체화한 선행은 불교실천수행의 제일 덕목이다.
‘무주상(無住相)보시’(금강경에서)
지혜(空)의 구현인 자비실행이라는, 대승불교의 핵심사상이 담긴 금구다.
보시란 나눔이다. 욕망 들어내기며, 마음 열기이다. 보시에는 재물과 역량을 나누는 재시, 진리를 전하는 법시,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무외시(無畏施)가 있다.
삼륜(三輪)청정. 나누는 이와 받는 이, 보시물 이 세 가지는 모두 텅 비어서 맑고 깨끗해야한다.
상에 머물 바 없는 보시란, ‘내’가 베푼다는 생색이나 칭송에 대한 기대, 미래에 얻게 될 복덕과 같은 상(相)에 집착 없는 보시를 뜻한다.
받는 이의 행복과 감사가 줄 자기만족에 대한 기대, 정작 대가가 목적이면서 아닌 척 행하는, 위선적인 '착한 사람 증후군'도 물론이다.
게다가, 수혜자의 심리적 불편함이나 부담까지 배려하려는 선의, 나의 선행을 세우지 않겠다, 무주상보시를 해야겠다는 그 같은 선의에 대해서도 얽매이지 말아야한다는 뜻이다.
무주상보시는 이기적인 자기중심주의인 아상(我相)에서 비롯된, 그 어떤 상에도 집착과 주저 없는 보시로써, 이타의 극치이다.
기대와 갈망은 집착을 잉태하고 집착은 번뇌를 낳고 번뇌가 장성한 즉 고통이 된다.
결국 무주상은 나(아상) 버리기이다. 따라서 얽매임도 흔적도 없이 자신도 모르게 행하는 '함이 없는 함’으로, 모든 속박과 고통에서 벗어나 무한 복덕인 ‘해방'이라는 궁극에 이르게 한다.
‘나'로부터 해방된 자리엔 자연스레 ‘함께'가 자리하기 마련이다. 아름답지 아니한가.
어렵다. 그러나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대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어서, 사무치다보면 어느 때고 툭! 낡은 들메끈이 끊어지듯, 기별이 오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
“오른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도 모르게 하라”(달라이 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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