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뉴욕의 한국인 미술가들-35] 화가 성기영, 초상화 그리기 외길 60년

중학생 때 미군 상대로 처음 시작…형태·표현·색감 등 3박자 모두 갖춰

화가 성기영(75)은 서울에서 태어나 60년 이상 초상화 하나만을 그리며 살아왔다.

현재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파크에 살면서 맨해튼 42스트릿 버스 터미널 지하철역 입구에 있는 ‘성 포트레이트 페인팅’ 스튜디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에게 있어 초상화를 그리는 것은 천직이며 운명이다. 평생 한 우물만 팠기 때문에 종교와는 차원이 다르지만 한 분야의 최고 경지를 구현하는 득도(得道)의 차원에 올라 있다.

성기영이 초상화를 처음 그리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때로 당시 그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성기영은 전쟁통에 경제가 어려워지자 미군부대 주변에서 일을 찾다 미군들의 부탁을 받고 그들과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 주는 일을 하게 된다. 성기영은 작은 사진을 받아 나름 열심히 초상화를 그려 주고 대가를 받아 가족의 생계를 도왔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 가족의 호구지책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젊을 때는 미술대학에 진학해 정식 그림 공부를 해서 대가가 되는 꿈도 꾸었지만 미군들을 따라 태국과 베트남, 사우디아라비아, 하와이 등을 유성처럼 떠돌며 수 많은 초상화를 그렸고 결국 미국에 와서도 붓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시대가 만든 환경에 따라 운명이 움직인 셈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린 만큼 성기영은 나름대로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가 많다. 반쯤 찢어진 부모의 사진을 들고 와 나머지는 알아서 채워 달라는 사람도 있었고, 태국에서 만난 한 미군 장교는 애인 얼굴을 그려 달라며 사진을 맡기고 간 지 이틀 만에 세상을 등지기도 했다.

미국에 와서도 성기영은 여전히 가족이 그립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간직하고자 하는 고객을 위해 초상화를 그린다. 그리고 한편으론 대중에게 친숙한 인물들의 초상도 끊임없이 그리고 있다.

흑인 민권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말콤 엑스는 물론 마릴린 몬로 등 연예계 스타, 요즘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그의 붓끝에서 정교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성기영의 초상화는 70대 중반 노화가가 그린 것으로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정확한 형태, 치밀한 표현, 생동감 넘치는 색감이 압권이다.

초상화는 미술사의 중요한 부분이다. 미켈란젤로와 렘브란트, 버미어 등 서양의 위대한 화가들이 불후의 명작을 그렸고 한국에서는 역대 최고의 초상화가 이당 김은호가 충무공 이순신, 한국화가 홍석창이 단군 왕검의 영정을 그려 역사로 남겼다.

보통 한국미술사에서는 초상화의 요체를 ‘전신(傳神)’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한다. 동진(東晉) 시대 미술이론가였던 고개지(顧愷之)의 화론에서 나온 말이지만 초상화를 그릴 때 인물 내면에 담겨 있는 정신과 혼을 그려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체험적으로 반영하듯 성기영은 “어떻게 하면 초상화를 잘 그립니까”라는 질문에 “초상화 잘 그렸다는 이야기 들으려면 눈을 잘 그려야 한다”고 선문답처럼 간단히 대답한다.

사람의 특징은 눈에 있기 때문에 눈이 닮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성기영은 평생을 초상화에 바친 노화가로서 일말의 안타까움도 전한다.

“미국이나 유럽은 초상화 문화가 발달해 있지만 한국은 초상화에 대한 의미와 가치가 여기에 미치지 못합니다. 돌아가신 분의 초상화를 내놓지 않고 감춥니다. 한국도 초상화가 미술 문화의 한 부분으로 더욱 발전하고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들이 미술사적으로나 대중적으로 더욱 인정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박종원 기자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