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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어바인에 그랜드캐년이 있다

“야청빛 여름 저녁 들길을 걸으리. 밀잎 향기에 취해 풀을 밟으면 꿈꾸듯 발걸음은 가볍고 머리는 바람결에 신선하리. 아무 말 없이 아무 생각도 없이.”

트레킹 다녀온 것을 글로 쓰려고 하다 아르튀르 랭보의 시 ‘감각’ 읽고 아찔해진다. 나는 어디를 걷고 왔나. 내가 지나온 곳의 하늘색과 향기는 어떠했나. 깊게 들여다보지 않았다. 이정표를 좇았고 잘 터지지 않는 휴대전화 인터넷만 두드렸다.

여행하다 보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진다. 그게 해결이 안 되면 장에 뭐가 찬 것처럼 여간 찜찜한 게 아니다. 그중 하나가 서부의 대자연이다. 그랜드캐년의 지붕은 왜 평평한가.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거대한 하프돔은 왜 저렇게 우두커니 높이 서 있나. 실마리를 찾을까 해서 지난달 ‘미니 그랜드캐년’이라 불리는 어바인 랜드마크의 더 싱크(The Sinks)를 취재 갔다. 수만 년 지질사가 압축돼 있어 2006년 연방정부가 ‘내셔널 내추럴 랜드마크’로 지정한 곳이다. 두 달에 한 번 인솔자 지도로 일반에 공개하는 금지된 땅이다.

오전 7시 30분 집결지인 어바인 어거스틴스테이징 에어리어에 도착했다. 생태 해설가가 캘리포니아 암석 표본을 꺼내 화성암을 설명했다. 그중의 하나가 화강암이다. 지구 대륙판에서 끓어 올라온 마그마가 지하 깊은 곳에서 천천히 식어 단단해진 돌이다. 킹스캐년과 요세미티 국립공원이 화강암 지대다. 여기서 막힌 속 하나가 뚫렸다. 캘리포니아 태평양판은 매년 서쪽으로 1~2인치씩 움직인다. 반작용으로 태평양 해양판이 가주 지하로 섭입한다. 3억만년 전인 고생대 때 해양판이 가주 아래로 들어가면서 강력한 에너지가 발생해 대륙판이 품고 있던 마그마가 폭발했다. 그때 만들어진 것이 요세미티 하프돔 같은 암석이다. 이후 화강암 지대는 지하에 숨어 있다 동쪽으로 움직이는 태평양판 반작용과 서쪽으로 이동하는 북미판이 맞부딪치면서 지상 높이 상승한 것이다.



그랜드캐년은 거대한 고원이었을 테다. 2억 년 전부터 땅이 솟아오르고 그 뒤 생성된 캘리포니아 만 때문에 남쪽으로 흐르는 큰 강이 생겼다. 또 북쪽 고산지대 빙하 녹은 물이 쏟아져 내려오면서 18억 년전 깊은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그 때문에 캐년 정상은 모자를 쓴 것처럼 평평하다. 어바인 생태 해설가는 첨언했다.

“어바인 해안가 절벽을 보세요. 산등성이 지층이 동쪽 위로 상승하고 있죠. 바다에서 밀려온 것들이라서 그렇습니다.” 가주 해안가는 1만 년 전인 신생대 때 밀려 온 해저 산맥과 화산 폭발이 만나 형성됐다.

그런데 참가자 표정이 맨숭맨숭하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는 반응이다. 우리는 랭보가 아니다. 수억 년 전 흔적을 통해 무언가를 깨닫기 난망하다. 이럴 땐 또 시인이 필요하다. “물로 반죽되고 불에 그슬려서 비로소 살아 있는 흙, 누구나 인간은 한 번쯤 물에 젖고 불에 탄다, (중략) 절대의 파멸이 있다면, 흙이 되기 위하여 흙으로 빚어진 모순의 그릇” 오세영의 시 ‘모순의 흙’이다. 인간은 결국 불타고 휘어지고 붕괴하는 땅에 빌붙어 사기 그릇처럼 살다, 깨져, 흙으로 돌아간다. 건축 평론가 존 브링커호프 잭슨도 폐허를 말하지 않았던가. “과거는 그 풍요로움 자체로 살아 돌아온다. 배워야 할 진리도 없고 추모해야 할 맹세도 없다. 우리는 순수했던 그 상태로 돌아가 자연이 된다. 역사는 사라진다.”


황상호 / OC취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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