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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세희 박사의 '몸&맘'] 자기 합리화가 위험한 이유

학문적 업적과 따스한 인품을 겸비한 A교수는 존경받던 의학자였다. 안타깝게도 그는 재직 중에 병사했다.



A교수가 몸에서 이상을 느낀 건 사망하기 1년전 쯤이었다. 그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명의에게서 최첨단 진료와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진료 대신 업무에 매진했다. 행여라도 '난치병 진단을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고약한 질병일수록 환자에게 매정한 게 속성이다. A교수는 날로 핼쑥해졌고, 제자들은 병원 진찰을 권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는 매번 "바삐 살고 운동도 즐긴 덕에 날씬해지는 중"이라며 충고를 일축했다.



시간은 흘러 녹음이 대지를 짙푸르게 채우던 초여름이 되자 기력이 다한 A교수는 마침내 병원을 방문했다. 진단은 말기 암. 그는 그해 가을을 못 본 채 세상을 떠났다.



비단 A교수뿐이랴. 어느날 갑자기 말이 어눌해지고 손에 힘이 빠져 찻잔을 떨어뜨렸던 B교수의 사연도 비슷하다. 20분 후 마비가 풀리자 B교수는 '혹시 뇌졸중 전조 증상이 아닐까'란 불안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아마 피곤 탓일거야'라며 스스로 위로하곤 일상으로 돌아갔다. 한 달 뒤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갔다.



난치병 선고를 받는 순간, 인간은 누구나 고통·공포·분노심을 느낀다. 현실을 인정하고 차분히 대처하기엔 닥쳐온 불행이 너무 큰 탓이다.



'내가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뇌는 재빨리 회전해 '뭔가 잘못됐을 것'이란 잠정적 결론에 도달한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부인함으로써 일시적이나마 마음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서다.



이런 심리적 반응은 정신의학적으로 '부정(denial)'에 해당하는데 중병은 물론 명백한 나의 잘못·죄책감·수치심·금지된 욕망이나 충동 등 힘든 상황을 직면할 때면 어김없이 나타난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한 신체의 자기방어 기전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삶을 꾸리는 과정에서 본능적 욕구와 현실·도덕 사이를 오가며 늘 심리적 갈등을 겪는다. 따라서 번뇌 없는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서도 항상 애쓰게 마련인데 이를 위해 대뇌는 수시로 각종 정신·심리적 기교를 동원한다.



인정하기 싫은 상황을 외면하는 '부정', 자신의 잘못을 그럴듯한 설명으로 포장하는 '합리화', 성적·폭력적 충동을 예술로 표출하는 '승화', 엄연한 사실을 자신의 욕망에 맞게끔 변형시키는 '왜곡' 등은 모두 심리적 기교에 해당한다.



물론 이런저런 정신적 방어기전을 동원해 일단 내 마음이 편해지더라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한 여전히 번뇌와 갈등을 유발할 불씨는 남는다.



개인의 질병이건 사회적 병리 현상이건 고통스럽더라도 조기 진단, 조기 치료만이 문제 해결의 지름길임을 정치권도 하루 빨리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한국 중앙일보 의학전문 기자 출신인 황세희 박사는 현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 예방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황세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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