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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생사 해탈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지만, 현실은 썩 만족스럽지 않아 보인다. 인간관계나 경제적 문제 같은 개인적인 원인에서부터 정치 사회적 이슈들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편안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 이유들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이러한 외적인 조건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늘 내적인 불안과 불만족에 시달린다. 기독교에서는 ‘원죄’ 또는 ‘소멸’, 불교에서는 ‘어리석음’이나 ‘집착’,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피투성(被投性, 의지와 상관없이 던져진 존재)’ 등으로 인간들이 숙명처럼 시달리는 불안과 고통의 근원을 설명한다.

죽음의 순간에 이르면 지위나 학식, 나이를 불문하고 열에 아홉은 발작 증세를 보인다고 한다. 불로초(不老草)에 대한 전설이나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는 속담 역시 모든 불안의 기저(基底)에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겠다.

종교나 철학은 진리추구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대상과 범위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 종교가 철학에 비해 보다 근본 이치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생사와 사후에 대한 언급은 철학과의 차별성을 명확히 보여주는 부분이다. 종교(宗敎)를 한자의 의미처럼 ‘근본 되는 가르침’으로 정의하든, 신과의 관계를 상정한 서구적 개념으로 정의하든, 종교라 이름 한다면 생사에 관한 직접적 가르침이 있어야 할 것이다.



불가에서는 생사(生死)가 무엇보다 큰일(大事)이고, 생사에 자유를 얻는 것은 수행의 주요 목적 중 하나이다.

불가에서는 생과 사를 기존의 생사 개념이 아닌 변화의 관점에서 이해한다. 인간의 생노병사를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순환하는 것, 자고 일어나는 것, 숨 들이쉬고 내쉬는 것, 심지어 눈 한번 깜박이는 것에도 비유를 한다.

화재보험이 있는 사람은 산불로 집이 전소되면 안타깝기야 하겠지만, 절망하거나 낙담까지 하지는 않듯이, 인간의 생로병사가 자연의 춘하추동과 같음을 깨닫거나 믿는 사람은 생사에 편안할 수 있다. 영생을 잘 살자는 거창한 이유까지 안가고 당장 누구나 맞게 될 죽음을 편안하게 맞이하기 위해서라도 생사에 대한 바른 이해와 믿음은 필요하다.

대종사께서는 본래에 생사가 없고 생사가 둘 아닌 자리를 베풀어 활용하라 하셨다. 생사가 둘이 아닌, 즉 영생을 믿는 사람은 아마 이렇게 살지 않을까? 첫째, 눈앞의 이익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판단하고 행동할 것이다. 둘째, 정성스럽고 진리적으로 삶을 가꾸어 갈 것이다. 셋째,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거나 혹은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에 매사에 편안할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동년배가 떠나는 것을 목격하기도 하고, 질병에 시달리기도 하면서 죽음은 비로소 “내” 문제로 다가오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직접 마주하기 전까지는 천년만년 살 것처럼 아무준비 없이 살게 마련이다. 생사의 이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믿음으로 현재의 삶을 장기적 관점에서 진리적으로 가꿔가고, 죽음에 당해서는 편안한 가운데 정신을 차려서 천도의 길에 미혹됨이 없기를 기원한다.


양은철 교무 / 원불교 LA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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