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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한국인 미술가들-39] 서양화가 고(故) 김환기, 한국 미술의 세계화 선도

단순한 구성에 감각적 필치, 뉴욕에서 생애 마지막 활동

고(故) 김환기는 1913년 전남 신안군 안좌도에서 출생해 74년 7월 24일 맨해튼에서 타계한 서양화가다. 섬이지만 유복한 가정에서 출생해 일찍이 그림에 재능을 보였고 당시 어촌 출신으론 드물게 일본에 유학해 미술 명문인 일본대 미술과를 졸업했다.

37년 귀국해 유영국 등과 함께 활동하다 46년부터 49년까지 서울미대 교수를 지냈고 이어 52년 홍익미대 교수가 돼 62년 홍익대 학장에 취임했고, 63년에는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 심사위원을 지냈다. 이 중간에 56년부터 59년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작품활동을 하면서 지내기도 했다.

김환기는 63년 브라질 상파울루비엔날레 심사위원 일을 하기 위해 출국해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뉴욕에 들어와 눌러 살면서 이후 운명할 때까지 11년간 작가로서 최고의 시기를 보냈다.

김환기의 작품세계는 ▷일본에서의 구성주의적 추상화 ▷한국 정착 후 한국의 소재로 그린 서정적 반추상화 ^반복적으로 점과 선을 연결하는 소위 전면점화(全面點畵)의 뉴욕 시절로 나눠진다.



그의 작품에는 태어날 때부터 간직한 회화성이 일관되게 녹아 들어가 있다. 일본 유학 시절 초기 작품인 ‘요코하마 풍경’에서부터 한국에 돌아와 산과 달, 나무와 꽃, 구름과 새 등을 그린 ‘산월’ ‘달과 항아리’ 등 작품 모두는 단순한 구성과 함께 대단히 감각적인 필치로 그려져 있다.

특히 신문과 잡지 등 출판에서 삽화 미술의 중요성이 부각되던 당시 김환기가 그린 각종 삽화들은 현재까지도 한국 삽화 미술 작품의 백미로 평가되고 있다. 뉴욕 시절은 그가 일생을 통해 추구해 온 한국적 감성을 바탕으로 하는 서정적 회화세계의 정점에 오른 시기다. 작품으로 또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미술가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김환기는 한국에서 공부하고 뉴욕으로 진출했거나 또는 미국에서 태어나 활동하는 한국인 화가들에게 미술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선구적 제안을 내놓고 있다. 김환기는 뉴욕 시절 늘 “어떻게 하면 한국 미술가들이 세계 화단에서 인정을 받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는데 1차적으로는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고 깨달았다.

그러나 김환기는 70년(타계 4년 전) 한국일보미술대상전서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란 작품으로 대상을 받은 뒤 “가장 개인적인 것이 민족적인 것이고, 가장 개인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위대한 결론에 도달했다.

김환기의 높은 작품성과 뉴욕의 한국인 미술가 1세대로서 개척한 길은 현대 미술사를 개척한 백남준과 더불어 대단히 높이 평가 받아야 한다. 백남준이 높은 지적 수준을 바탕으로 미술의 형식과 기능을 새롭게 해석, 개척했다면 김환기는 내면의 문학적 서정성을 바탕으로 한국적 소재와 조형으로 한국의 마음과 예술혼을 세계적으로 구현해 낸 화가라 할 수 있다.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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