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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 갈려 헐뜯는 세태…진실 기다리며 평정심 유지해야

뇌는 자신 치부 본능적으로 외면
궤변으로 진영 입장 대변하기도

영화 '야바'의 주인공 할머니처럼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이 아름다워

정신이 건강하려면

민주 시민이라면 누구나 사회적 이슈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표명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멋진 교양인이 되려면 본인의 생각을 지나치게 주장하거나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의견이 관점에 따라 옳지 않을 수도 있고, 설사 명백한 사실로 보이더라도 생각이 나와 다를 땐 수긍하기보다는 분노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개인차는 있지만 통상 자신의 기대와 상반되는 현실이나 치부를 직면하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은 일단 본능적으로 진실을 덮거나 외면하고 싶어한다. 심적 고통을 피하고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한 뇌의 전략적 반응이다.

정신의학은 우리 뇌가 인격 발달 과정을 거치는 동안 스트레스에 대처하기 위해, 또 내적 욕망과 주어진 현실 그리고 꿈꾸는 이상 간의 차이가 빚어내는 심리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기교를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욕망이나 충동.생각은 마음속 깊은 무의식에 둔 채 의식 세계에서는 자신도 알아채기 힘든 다른 형태로 표출된다. 예컨대 죄의식이나 수치심은 억압이라는 방법을 활용해 '기억 상실'로 나타날 수 있다. 자기 잘못이나 욕망을 그럴듯한 해명이나 이유로 설명하는 합리화도 많이 사용한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가 대표적인 예다.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너무 속상한 일이다 보니 핑계로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일상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정신적 메커니즘은 인정하기 싫은 현실을 "아니다, 틀렸다"라는 식으로 반응하는 부정(否定)이다. 권력자들이 청문회 등을 통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을 변명할 때, 또 TV 토론회에서 유명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외면하고 궤변을 늘어놓는 순간에 흔히 볼 수 있다.

사실 큰 이익을 위해 거짓말과 왜곡.은폐.막말 등을 사용하는 일은 권력자든 장사꾼이든 가릴 것 없이 쉽게 한다. 이런 현상을 학문적으로 분석한 국제정치학계의 석학 미어샤이머 교수는 '왜 리더는 거짓말을 하는가'라는 책을 통해 "특히 민주주의 지도자들이 자국민을 향해 거짓말을 잘하기 때문에 그 위험성에 대해 국민이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최근에 워싱턴포스트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하루 평균 13번씩 거짓말이나 사실 왜곡을 했다고 발표했다.

다행히 첨단 과학의 발달은 사회를 투명하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실제 지금은 위법 행위 장면을 누구나 실시간으로 촬영할 수 있으며 증거 인멸도 포렌식 기법으로 대처한다. 범죄 발생률과 관련된 외국의 연구 결과도 뉴욕 등 대도시의 범죄율을 현저히 낮춘 일등 공신은 시민의 도덕성 회복이 아니라 화질 좋은 감시카메라(CCTV)임을 보여준다.

현재 사회적 논란이 되는 사안의 실체 역시 개인적 희망이나 추측과 무관하게 조만간 드러날 것이고, 보다 성숙해진 시민 사회는 지속해서 전개될 것이다. 진중권 교수가 말한 "진영 싸움에 미쳐버린 윤리적 패닉 상태"처럼 보이는 현 상황도 역사 발전을 위한 인고의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니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나 유명인이 궤변, 거짓말, 가짜 뉴스 등을 동원해 자신의 이익과 직결된 진영의 입장을 주장하더라도 선량한 시민들은 평정심과 용기를 가지고 객관적 진실을 확인하면 된다.

영화 ‘야바’ 포스터.

영화 ‘야바’ 포스터.

지금처럼 사회적 논란인 사안을 두고 진영 간 대립이 심해지는 시대일수록, 나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나쁜 정치인을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과 마주치더라도 담담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정치인은 물론, 상습적인 마약 복용자나 중범죄자에게도 팬을 자처하는 그룹은 항상 존재한다. 수 십명의 여성을 엽기적 방법으로 살해한 미국의 연쇄살인범 테드 번디에게도 교도소로 수많은 팬레터가 도착했고 심지어 재판 중에 그와 결혼해 딸을 낳은 여성까지 있다.

누군가를 이유 없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현상은 어린 시절 자신에게 중요했던 인물과 무의식적으로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한데 대부분 본인도 그 이유를 모른다. 그러니 객관적 이해가 애초에 불가능한 타인의 행위를 무작정 비난하는 일은 성숙한 성인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출생 후 성인이 될 때까지 켜켜이 쌓인 개개인의 역사는 어차피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게다가 현대 사회는 또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가.

수많은 사람의 다양한 특성과 취향을 인정할 능력을 갖추려면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선한 본성을 믿고 자신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칸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연맹상을 수상(1989)한 영화 '야바(Yaaba)'는 아프리카 시골 마을에서 부당하게 마녀 취급을 받는 할머니와 열 살 소년의 우정을 통해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승화된 사랑을 잘 보여준다. 영화에서 소년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하는 할머니에게 "저들이 왜 괴롭히냐?"고 묻는다. 그러자 그녀는 분심을 표현하는 대신 "그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라고 답한다. 할머니는 자신을 향한 마을 사람들의 악행이 사실은 그들 스스로에 대한 폭력과 미움의 표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야바'의 주인공처럼, 진정 자신을 믿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언행은 아름답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이라야 가족도 이웃도 평생을 왕래하면서 함께 지내고 싶어한다. 믿음이나 사랑처럼 인생에서 참으로 중요하고 고귀한 것은 결코 돈이나 권력으로 살 수 없지 않은가.

황세희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서울대병원에서 인턴·레지던트·전임의 과정을 수료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MIT대에서 연수했다. 1994년부터 16년간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면서 ‘황세희 박사에게 물어보세요’ ‘황세희의 남자 읽기’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 몸&맘’ 등 인기 칼럼을 연재했다.


황세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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