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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데 한없이 편안한 느낌 들면 뭔가 잘못

학업 성취도 높여주는 수강생의 자세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한평생 숨 쉰다고 호흡 달인 되나
가벼운 덤벨 들면 근육 안 생기듯
생각의 근육 키우려면 좀 무겁게
학점은 목적 아닌 수단·과정일 뿐
성적 잘 안 나와도 낙담하지 말길
사회적 신뢰 무너질 때 적폐 쌓여


안녕하세요. 오늘은 수업 첫 시간이니 진도를 나가지 않고 이 수업의 목표가 무엇인지, 그리고 한 학기 동안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이 수업이 필수과목이 아니라 선택과목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다시 말해서, 졸업을 위해 억지로 들을 필요는 없습니다. 듣고 싶어서 듣기 바랍니다. 학점을 따려고 필기 내용을 달달 외운 뒤, 시험 때가 되면 토사물 뱉듯이 뱉어놓은 뒤 내용을 잊어먹으려거든, 이 수업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학점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나 과정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학생, 자발적으로 내용을 배우고자 하는 학생, 그리하여 자기 갱신을 이루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이 수업은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나 역시 먹고살기 위해서 할 수 없이 하는 일, 월급을 받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하는 일에 임하듯이 수업에 임하지는 않겠습니다. 최대한 여러분의 발전을 돕고자 수업에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성공할지 어쩔지는 모르지만, 이 수업은 여러분들의 지적 변화를 목표로 합니다. 수업을 듣기 전과 후에 아무런 변화도 없다면, 그야말로 시간 낭비가 아니겠습니까. 변화란 그냥 생기지 않고 좀 힘들다 싶을 정도로 매진할 때 비로소 생깁니다. 운동할 때를 기억해보세요. 너무 가벼운 무게의 덤벨을 들면, 아무런 근육도 생기지 않습니다. 평소보다 좀 더 무거운 무게를 반복해서 들 때 비로소 근육이 생깁니다. 생각의 근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평생 숨을 쉬며 살아왔지요. 그래서 호흡의 달인이 되었나요? 대충 숨 쉬며 산다고 해서 호흡의 달인이 되지는 않습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하는 중에 한없이 편하다는 느낌이 들면, 뭔가 잘못하고 있을 공산이 큽니다.



변화는 힘들게 매진할 때 생겨

평소보다 좀 더 무거운 지적 무게를 들기 위해서는, 일정한 규율이 필요합니다. 러시아의 유명한 영화감독 타르코프스키는 주기적으로 정해진 일을 하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일단 수업에 지각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지각하면 수업에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수업을 관통하는 기승전결의 흐름을 놓치게 됩니다. 여러분들의 지각을 막기 위해 매번 정시에 출석을 부르겠습니다. 학기말쯤 되면 여러분 이름을 다 외우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여러분만 지각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저 역시 한 학기 내내 지각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결석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수업에는 장기적인 흐름이라는 게 있으므로, 한번 결석하면 단지 그날 수업 내용을 놓치는 일에 그치지 않고, 한 학기를 관통하는 큰 흐름을 놓칠 공산이 큽니다. 아파서 결석하는 경우는 어쩌냐고요? 아프지 말기 바랍니다. 물론 원해서 아픈 사람은 없겠지요. 평소에 잘 씻고 끼니를 거르지 말고 규칙적으로 운동해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야 결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 역시 한 학기 동안 아프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사안은 아무래도 젊은 여러분들이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수업 시간 도중에 특별한 이유 없이 강의실을 나가서도 안 됩니다. 오래전 일인데요, 강의 도중 어떤 학생의 전화벨 소리가 울리고, 그 학생은 그 전화를 받기 위해 천연덕스럽게 강의실을 나갔다 오더군요. 오랫동안 자아 수양을 해왔기에, 다행히 그 학생에게 날아차기를 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수업 도중에 강의실을 나가는 행동은 다른 학생들과 수업 진행에 지장을 줍니다. 영화관에 들어가면 휴대 전화를 끄는 것이 예의이듯이, 수업 시간에는 전화를 꺼 놓는 것이 예의입니다. 저 역시 제 전화를 꺼 놓겠습니다.

수업 도중에 화장실에 가도 안 되냐고요? 물론 안 됩니다. 여러분은 성인이고, 성인의 자부심은 똥오줌을 참을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1시간 30분 정도는 생리현상을 관리할 수 있으리라는 사회적 기대가 있습니다. 마치 극장에 들어가기 전에 화장실에 들르듯이, 강의실에 들어오기 전에 화장실에 들르기 바랍니다. 그리고 손을 씻기 바랍니다. 예외적인 사정이 있는 사람은 미리 상의해주기 바랍니다.

아무리 화장실에 미리 다녀왔어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수업 중에 갑자기 손을 들고, "뭔가 나와요!"라고 울부짖는 것은 민망한 일이겠지요. 그런 경우에는 노래를 부르기로 합시다. 수업 중에 불가피하게 화장실에 가야 할 사정이 생긴 사람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겁니다. 어디선가 나직하게 들려오는 노랫가락을 듣고 우리는 누군가 곧 강의실 문을 나갈 것을 예감하고, 그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한 나머지, 강의에 집중력을 잃지 않을 수 있겠지요. 노래를 부르며 강의실을 떠나는 학우의 고통을 공감하고 양해할 수 있게 될 겁니다. 공감과 양해는 규율 못지않게 중요한 시민적 덕성입니다. 노래하는 목소리가 클수록, 곡조가 슬플수록, 그가 처한 상황이 위중하다는 신호이겠지요. 저 역시 만에 하나 급히 용변을 봐야 할 사정이 생기면, 장송곡을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제 설명을 들은 여러분 중에는, 아 뭔가 잘못되고 있다, 빨리 강의실을 나가서 수강을 취소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 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제 얼굴을 보자마자 바로 강의실을 나가 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이해합니다. 그러나 갑자기 앞다투어 강의실을 떠나면 그 역시 수업에 폐가 되니, 쉬는 시간까지 기다려주기 바랍니다. 쉬는 시간에 떠나면, 저도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고, 떠나는 사람도 식은땀을 흘리지 않고 명예롭게 강의실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학점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겠군요. 강의 계획서 첫 페이지에, 학점을 얻기 위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과 배점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정확히 이 기준에 의해 학점이 계산됩니다. 수업 시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 역시 성적 산정에 중요한 요소임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수업은 남이 차려준 밥상을 자기 입맛대로 먹는 시간이 아닙니다. 선생은 선생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수업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할 일이 있습니다. 학생 역시 선생만큼이나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해야 합니다.

성적 안 좋다고 엄마 찾아오면…

학기 말에 성적이 원하는 만큼 잘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너무 낙담하지 말기 바랍니다. 뭔가를 열심히 하고 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있기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렇지만 개인의 주관적인 소망과 객관적인 평가 결과가 반드시 일치하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평가가 객관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 사회에 통용되는 성적표와 추천서가 신뢰를 잃게 됩니다. 적폐가 따로 있겠습니까?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가 쌓이면 적폐가 됩니다. 한두 과목 성적이 안 좋다고 해서 인생에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별다른 근거도 없이 성적을 정정해 달라고 떼를 쓰지 말기 바랍니다. 성적 정정을 위해서는 근거가 필요합니다. 근거도 없이 사정을 해보아야 성적은 변하지 않습니다. 절 보십시오. 벌써 느낌이 오지 않습니까? 그런 사안에 대해 국물이 있을 것 같아 보입니까?

성적 관련 사안에 대해 최대한 냉정을 유지하고자 하는 저도 두려워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듣자 하니, 자식들의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면, 어머니나 아버지가 학교에 찾아와서 통사정하거나, 떼를 쓰는 경우가 간혹 있다곤 하더군요. 참 난감할 것 같습니다.

대학은 유치원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성인이고, 성인이라면 스스로 똥오줌을 가릴 줄 아는 것처럼, 자신의 성적 역시 스스로 관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엄마에게 독립영화를 찍어달라고 한 뒤, 그 영화를 들고 독립 영화제에 참가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강조했는데도, 성적이 안 좋다고 여러분들 엄마가 연구실에 찾아와서 저를 괴롭히면, 저도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저도 엄마를 불러올 수밖에.


김영민 /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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