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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만 듣던 일, 우리 가정에도 발생했다"

[LA중앙일보] 발행 2020/03/17 종교 22면 기사입력 2020/03/16 18:32

[특별 기고]
'코로나19'로 언니 잃은 장로회신학대학 박보경 교수

피해는 노약자들에게 돌아가
생명 보호하는 일 가장 중요

교회에서 예배 소중함 깨달아
고난당한 이웃 돌보며 감싸야

신앙인은 어려울수록 실천해야
가장 강력한 복음 증거 원동력


코로나19의 공포가 미국을 뒤덮고있다. 두려움이 일상을 삼켰다. 한국 장로회신학대학 박보경 교수(선교학)가 이번 사태와 관련, 신앙을 통한 상념을 글로 옮겼다. 그는 지난 2월 한국 대구에 살고 있는 가족을 찾아갔다가 언니의 확진 소식을 접했다. 온 가족이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였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 풀어낸 진솔한 고백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후 박 교수는 자가 격리 기간을 보낸 뒤 다행히 음성 판정을 받았다. 본지는 박 교수의 기고문을 소개한다.
(확진 판정을 받은 박 교수의 언니는 이 글이 쓰인 뒤 지난 14일(한국시간) 끝내 숨을 거뒀다. 박 교수는 "가족들이 신앙으로 꿋꿋하게 슬픔을 이겨내고 있다"고 전해왔다.)

코로나19가 온 나라를 강타했다.

대구에 사는 어머니(92세)의 상태가 걱정되어 가족회의를 해야겠다는 연락을 받고 그곳으로 내려갔었다.

대구에 도착하자마자 하루 만에 집단 발병이 발발했다.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건물은 하나씩 폐쇄됐다. 여기저기서 확진자 이야기가 들려오는 가운데 도시는 스산하게 변해갔다.

혹시라도 어머니에게 몹쓸 전염병이 옮기게 되면 그 결과는 너무나 자명한 것이기에 노심초사했다. 집을 드나들던 이웃 할머니들도 사라져버렸다. 가족들도 전화만 주고 받을 뿐이었다. 자가용 운전이 용이하지 않은 언니들은 택시 타기가 두려워 집 밖을 나가지 못했다. 마트 조차도 마스크 없이는 출입이 불가능했다. 확진자가 한번 지나가기라도 하면 무조건 폐쇄하는 상황이었다. 교회마다 예배는 취소되고, 도시 전체가 완전히 멈추어 선 듯 했다.

설상가상이었다. 나 역시 감기 증상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바이러스 감염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대구행이 자칫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괴로움이 밀려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자가 격리뿐이었다. 소독제를 여기저기 뿌리고 식사를 따로 한다고 해도, 같은 집에 함께 지내면서 어떻게 완벽한 격리를 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막막했다. 서울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매일 찾아 오던 요양보호사도 내가 감기증상을 보이자 발길을 끊었다.

바로 보건소에 연락했지만, 대구에서는 증상 환자가 너무 많아 검사 대상 우선권에서 밀렸다. 그냥 상태를 지켜보면서 더 기다리라는 통보만 받았다. 그러다가 증상이 심해지면 그때 선별 진료소로 가서 입원을 요청하라는 것이다. 폐렴으로 진행돼야 병원에 갈 수 있었다.

스스로 나으면 다행이고, 병세가 악화하면 그제야 병원에 갈 수 있다니 기가 막힌 지시였다. 검사도 못해보고 불안에 떨어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스스로 이겨낼 수 있도록 잘 먹고, 잘 쉬고 나의 면역력에 의지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다른 이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자가 격리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극도의 스트레스는 우리 가정을 이렇게 엄습했다.

그러던 중, 며칠 전부터 감기 몸살을 앓던 언니가 점점 더 심해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언니는 결국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설마 했던 확진자가 되고야 말았다. 뉴스로만 듣던 일이 우리 가정에도 발생한 것이다.

언니는 확진자가 됐지만 워낙 많은 환자가 입원을 기다리고 있던 터라, 자택에서 자가 격리하면서 대기하는 날이 계속됐다. 하루에도 몇 번씩 구청에 연락했으나, 계속 기다려 달라는 응답뿐이었다.

언니의 호흡은 점점 더 가빠지고, 의식도 조금씩 약해졌다. 더군다나 일주일 이상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방안에 계속 누워만 있는 언니를 지켜보던 형부는 눈물로 관계자들에게 호소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죽더라도 링거 한번 맞고 죽게 해주셔야 지요. 치료 한번 못 받고 죽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구급차에는 산소 호흡기가 있지 않습니까. 그거라도 받게 해주세요."

구급차를 불렀으나 병원을 찾지 못했다. 결국, 구급대원은 눈물을 머금고 아픈 환자를 내려놓고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날 저녁 상태가 위급하여 다시 구급차를 불렀고, 구급차 안의 산소 호흡기에 의지한 채 병상이 마련되기를 바라면서 마냥 기다렸다.

구급대원은 "걱정하지 마세요. 밤새 계속 계셔도 됩니다"라고 안심을 시켜주며, 함께 자리를 지켜주었다. 구급대원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선행으로 강도 만난 자 같은 언니에게 이웃이 되어주었다.

몇 시간 후 기적같이 병상이 마련되었다. 입원한 후 겨우 안심을 한 것도 잠시, 병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미 상태가 나빠졌으니 각오를 하라는 의사의 말에 우리 가족은 다시 하늘이 무너졌다.

이 모든 일은 불과 며칠 만에 일어났고, 대구는 이런 환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수많은 이웃이 갑작스럽게 변해버린 일상 때문에 총체적인 충격 속에 어찌할 바를 몰라 비통해 하고 있다.

지난 몇 주간의 경험은 삶과 죽음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특히 3주간 대구에서 갇혀 있다시피 한 경험 속에서 코로나19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타인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 이 경험을 몇 가지로 나누고자 한다.

우리는 공포감 없는 경각심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지나친 공포감도 문제이지만, 지금은 절대적으로 조심해야 할 때다. 부디 자신의 건강을 돌보는 일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모임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피해는 노약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다. 그들은 내 가족이며 이웃이다. 생명을 보호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지금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감사를 잊지 않아야 한다. 영상 예배를 드리면서,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어머니와 내가 영상으로 들려오는 목사님의 찬송 소리와 함께 찬양을 할 때, 그리고 장로님의 기도에 맞추어 함께 눈을 감고 기도할 때, 목사님의 설교를 경청하며 '아멘' 할 때, 그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은혜를 경험했다. 이렇게 절절하게 말씀이 다가온 적이 얼마 만인가.

또한, 언니의 상태가 위급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도움을 여기저기 청할 때마다 함께 아파하며 방법을 찾아주신 많은 분이 있음에 감사했다.

나에게 선을 베풀어주시는 수많은 사람이 있기에 그나마 견디고 있는 것이다. 보내온 사랑과 격려로 인해 받은 위로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어려운 때일수록 도움의 손길을 얻을 수 있는 이웃과 동료가 있어 감사하다. 이 감사의 고백이 오히려 마음의 면역력을 높여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난 당하는 이웃을 돌보며 감싸 안아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바이러스의 침입으로 갑작스럽게 강도 만난 자 같이 되어버린 사람이 많다. 뉴스에서 나오는 기사는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확진자가 되어 입원을 했다고 해도 격리 조치가 일어나기 때문에 혹시라도 회복되지 않을 경우 가족과 만나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참으로 갑작스럽고 비통한 이별이 되는 것이다.

이들은 강도 만난 자들이다. 난데없이 병마를 만나 심령까지도 크게 다쳐 깊은 슬픔 속에 있는 자들이다. 이럴 때 이웃을 향하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실천은 실제로 가장 강력한 복음 증거의 원동력이 된다.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이 더 바르게 행동하고, 더 많이 희생하고, 더 많이 고통받는 자들을 감싸 안아야 한다.

그때가 바로 복음이 우리의 삶으로 전달되는 순간이다.


<이 글은 '한국기독공보'에도 소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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