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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일상이 행복이고 자유였다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다. 일상을 간과했다.

요즘은 보이지 않는 것(바이러스)이 되레 보이는 것의 가치를 절감케 한다. 역설이다.

새삼 깨닫는다. 햇볕과 바람은 벗이었다. 당연하게 누려오다 소중함을 잊었다.

꽃과 잔디는 언제나 우리를 맞았다. 자연의 푸르름이 아름다움이었다.



산과 바다는 늘 그 자리에 있는데 지금 우리는 그곳에 없다. 아니 갈 수 없다. 제약당하니 그리워진다. 그동안 거저 향유하느라 귀한 줄 몰랐다.

공원 놀이터에는 왁자지껄하며 뛰놀던 아이들이 종적을 감췄다. 그 웃음소리를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는가.

세상은 교감으로 생기가 돈다. 전해지는 사람의 온기로 말이다. 이제는 거리 두기로 시들하다. 마스크 천 조각 하나에 서로의 호흡이 막혔다. 별것 없이 나누던 소소한 대화가 소통이었다.

일상만 멈춘 게 아니다. 세상도 멈췄다. 탄탄한 줄 알았던 세계 경제가 감염성 입자 하나에 와르르 무너지는 걸 봤다. 경제는 거대담론이라 치자. 주변부터 당장 아우성이다. 생계의 끝자락에서 버티는 이가 한둘이 아니다. 쳇바퀴 돌던 삶이 지루했어도 그게 감사 아니었던가.

자본의 순환이 막히니 당장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 분명 뭔가 잘못된 거다. 그동안 인류가 쌓아온 것을 돌아보게 된다.

재물만 있으면 만물도 지배할 줄 알았다. 소유의 양으로 삶의 가치를 매겼다. 희로애락은 거기에 좌우됐다. 우리는 지배한 게 아니라 지배당하고 있던 게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 인생의 본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다시 각인하니 겸허해진다.

어리석었다. 유한한 것을 손에 쥐고 마치 무한을 가진 것처럼 은연중에 자만했다. 이젠 그 누구도 가진 것을 두고 자신할 수 없음을 실토하게 된다.

예외는 없다. 보이지도 않는 입자에 몸뚱이부터 사린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바이러스 하나 쉽게 떨쳐내지 못한다. 속절없는 현실에 고개를 떨군다. 고작 흐르는 물에 수시로 손을 닦으라는 게 21세기가 내놓는 최선의 방책이다.

두려움에 생필품을 마구 집어 든다. 이기심이 시야마저 가렸다. 모자람이 가득하다. 사재기는 이웃마저 외면하게 했다. 슬픈 인간사다.

본래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다. 작금의 현실 속에 이면을 보니 더욱 그렇다. 함께 살아가야함이 보다 절실히 와 닿는 시기다. 두 개의 휴지 뭉텅이 중 하나를 내려놓으며 이타를 익혀본다.

멈춤은 잠시 숨 돌릴 틈을 갖게 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자연도 숨을 쉰다. 교통량이 줄자 이산화질소량이 감소했다. 베네치아도 운하의 탁도가 개선돼 물이 맑아졌다.

시간 할애마저 달라졌다. 가족애가 공고해진다. 한 지붕 아래 아이들과 웃고 떠들며 부대끼는 시간이 늘었다.

바이러스 입자에 모두가 아우성이다. 현실은 냉랭하다. 살면서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싶지만 자명한 건 이 시기 또한 지나간다.

매번 역사가 말한다. 펜데믹 이후 사회 구조는 변화한다. 혁신을 통해 도약한다고….

그 지점에서 의문이 든다. 세상은 그렇게 진보할 수 있는가. 표피보다 심층의 변동이 절박하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우리가 그리워하던 것을 다시 누릴 때 오늘의 신음을 잊을까 두렵다.

일상, 그 자체가 행복이고 자유다.


장열 사회부 부장 jang.yeol@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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