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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미국을 지탱하는 힘

역설적이지만 미국에 살기를 결심한 계기 중 하나는 노스리지 지진이다. 1994년 규모 6.7의 강진이 발생했다. 당시 진앙지 부근 그라나다힐스에 살았다. 가공할 지진의 위력에 집은 파손됐고 전기, 수도, 개스 시설은 작동하지 않았다.

지진은 불가항력의 자연재해지만 사후 대처는 신속했다. 정부는 우편번호를 기준으로 지진 지역 모든 주택에 일괄적인 현금지원을 제공했다. 주택 복구와 시급한 문제 해결에 사용하라는 것이다. 개스 복구는 최소 3일, 전기는 일주일 걸린다고 했다. 지진 규모를 감안할 때 최소 2~3배 더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개스는 지진 발생 당일이 지난 새벽에, 전기는 3일 만에 복구됐다.

연방재난관리청(FEMA)은 LA지역 직원이 부족하자 전국의 직원을 불러 복구지원에 착수했다. 집을 방문했던 덴버에서 온 FEMA 직원은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지원 내용을 자세히 설명했다. 얼마 후에는 지진 공포로 트라우마를 겪는 주민을 위한 무료 정신상담도 제공됐다.

지진이라는 재난을 겪으면서 태평양에 떠 있던 마음을 접고 영주를 결심했다. 국가의 위기 대처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하고 최소한 국민의 생존을 보장할 능력이 있는 미국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그런 나라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었다.



코로나19에 안일하게 대처했던 미국이 위기를 맞고 있다. 정치인과 의료인의 말이 다르고 상황을 지휘할 컨트롤타워도 없다. 코로나 대응방식도 과학적 사실이 아닌 정치적 이해관계에 좌우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12일자에서 의료전문가 그룹 ‘붉은 여명(Red Dawn)’이 지난 1월부터 코로나19를 경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정부의 코로나 대응을 미화하는 영상을 틀었다. 이에 CNN과 MSNBC방송은 송출 중단으로 맞섰다. 코로나라는 사상 최악의 사태 앞에서 치기 섞인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트럼프는 또 세계보건기구(WHO)에 대한 자금지원 중단을 명령했다. 코로나 대처가 미급했다는 이유를 달았지만 설득력은 없다.

코로나19 사태는 노스리지 지진과 다르다. 지진은 특정 지역에 국한된 재난이고 발생 가능성이 상존해 대비책도 마련돼 있다. 코로나는 지금까지 겪어본 적 없는 상황이고 지역도 전국에 걸쳐 있다.

그렇다고 변명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세계 최강을 외치던 미국이 마스크와 세정제 부족을 걱정해야 할 수준으로 대책은 부재했다. 위급상황시 필요 물품을 확보하는 국방물자생산법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인구당 병상 수는 OECD 국가에서 10위권 밖이다. 일본과 한국은 물론 헝가리, 체코, 폴란드 보다 적다. 환자는 넘쳐나고 시신은 방치되고 있다.

지진 당시 정부의 대책도 원활했지만 더 빛났던 것은 자원봉사 활동과 성숙한 시민의식이었다. 재난 피해자를 돕기 위해 각처에서 봉사자들이 쇄도했다. 전기가 끊어져 신호등이 작동되지 않은 교차로에서 조금의 혼란도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뉴욕주 확진자가 기아급수로 늘어날 때 은퇴한 의료진들까지 목숨을 무릅쓰고 그곳을 찾았고 자신들도 부족한 마스크를 의료진에게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 사회적 거리두기 등 확산방지 대책도 속속 이행되고 있다.

정부가 흔들릴 때 국민이 중심이어야 한다. 미국을 지탱하는 힘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 것은 임기 채우면 떠나는 정치인이 아니라 자자손손 이 땅에 살아갈 국민들이다.


김완신 논설실장 kim.wanshi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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