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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한국과 거리 두기

말의 힘이 크다. 용어나 정의되는 개념에 의해 생각과 의식이 지배되기 때문이다. 요즘 유행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도 그렇다.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면서 이 말은 자연스럽게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상황이 나아지더라도 사회적 거리 두기는 뉴노멀(New Normal), 즉 우리 사회의 새로운 표준이 될 개연성이 높다.

걱정이다. 거리 두기라는 말 자체가 친밀, 친숙, 친교, 어울림, 더불어 살기 등 여태껏 우리가 추구했고 실천하고자 했던 가치들과는 너무 배치되어서이다. 말이 좋아 사회적 거리 두기이지 노골적으로 말하면 가능한 한 말 섞지 말고, 함께 밥 먹지도 말고, 가까이 있지도 말라는 뜻이다. 이러고서 어떻게 사람살이가 가능할까.

사람을 뜻하는 인간(人間)이라는 한자도 서로 지탱해 주는 모양의 ‘사람 인(人)'자에 문과 문 사이에서 말을 주고받는 모양의 ‘사이 간(間)’자로 이루어져 있다. 서로 의지하고 말을 섞으며 살아야 비로소 인간이라는 뜻이다. 앞으론 이런 개념조차 바뀔까 싶어 두렵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현대 사회의 특징 중 하나로 급격히 높아진 사회적 밀도를 꼽았다. 인구 밀도가 높을수록 사람끼리의 접촉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그럴수록 타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이론도 다시 써야 할지 모른다.



이번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혼자 먹고, 혼자 마시고, 혼자 노는 일이 전혀 불편하거나 어색하지 않은 세상이 될 것이다. 물론 좋은 점도 있겠다. 보기 싫은 사람, 나대고 설치는 사람들의 오지랖이나 주제넘은 참견을 안 봐도 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그렇다고 모두가 무인도에 표류한 로빈슨 크루소가 아닌 이상 어떻게 그렇게만 살 수 있을까.

미국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타인을 향한 시선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증오의 시선, 무시의 시선, 배려의 시선이다. 배려의 시선이란 자연스럽게 바라는 보되 이내 관심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연세대 김호기 교수는 이를 ‘예의 바른 무관심’이라 부르며 사회적 거리 두기 시대에 꼭 필요한 것은 이런 시선이라고 했다.

그렇다. 싫어도 같이, 좋아도 같이,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모두가 어우러져 함께 살아야 하는 게 인간이고 사회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의 진짜 뉴노멀은 무작정 거리 두기가 아니라 배려의 시선이고 예의 바른 무관심이어야 한다.

우리 한인들이 한국(혹은 한국 정부)를 바라보는 시선도 똑같이 위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겠다. 첫째는 증오의 시선이다. 한국에서 하는 일은 무조건 마음에 안 들어 하고 괴로워하며 날 선 언어들로 비판한다. 과잉 정치, 과잉 이념의 한 쪽에 발 담그고 내 편 네 편, 편을 가른다. 둘째는 무시의 시선이다. 한국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알 바 아니라는 태도다. 여전히 60~70년대 후진국으로 여겨 얕잡아 보거나 폄하하는 우쭐거림도 있다. 셋째는 배려의 시선이다. 한국에 대해서 관심은 가지되 응원할 땐 응원하고, 모른 체 하는 게 나을 땐 모른 체 해주는 태도다. 물론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세 번째다.

한국 총선이 끝났다. 사상 초유의 결과에 환호하는 이도 있고 울분을 토하는 이도 많다. 그렇지만 걱정할 것 없다. 당장 망할 것 같고 내일이라도 사달이 날 것 같지만 그럼에도 한국은 잘 버텨왔고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은 예전의 약소국이 아니다. 해외 한인들이 걱정 안 해도 충분히 잘 헤쳐 나갈 것이다.

이곳 미국에서 더 관심 두고 추구해야 할 일만으로도 우린 바빠야 한다. 시대가 요구하는 ‘거리 두기’는 이젠 한국과 먼저 실천하는 게 좋겠다. 배려의 시선으로, 예의바른 무관심으로.


이종호 편집국장 lee.jongho@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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