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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교훈의 대가가 비쌀 필요는 없다

“잠자는 거인을 깨워 무서운 결과를 낳을 것인지 나는 두렵다.”

79년 전 선전포고없이 미국의 하와이 해군기지 진주만을 공습한 야마모토 이소로쿠 일본 해군 연합함대 사령관의 말이다.

기습 성공을 뜻하는 전보 ‘도라, 도라, 도라’를 받은 직후였다. 도츠게키(돌격)와 라이게키(뇌격)의 첫 글자를 합친 암호문은 ‘호랑이’라는 뜻이다. 일본은 면적 26배·인구 2.6배인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건 유일한 아시아 국가이기도 하다. 21세기에 이 기록(?)을 깰 수 있는 나라는 아마도 중국 정도가 아닐까.

하버드대 출신의 야마모토는 허황된 육군 수뇌부에 비해 거인의 잠재력을 누구보다 잘 인식하고 있었다. 승산없는 태평양 전쟁개시를 극력 반대했다. 강경파로부터 암살 위협까지 받은 그는 1943년 4월18일 남태평양 부건빌 섬 전선 시찰을 위해 폭격기를 타고 출발한 직후 암호를 해독한 미군 항공대의 공격으로 피살된다.



충신의 말을 무시한 일본의 무모한 싸움은 자살 특공대 ‘가미카제’까지 동원했지만 두 차례의 원자폭탄 투하를 자초하며 끝났다. 2차대전에서 항복한 일본은 아직도 패전이란 용어보다 ‘종전’이란 중립적 단어를 쓴다. 전쟁광 히로히토 천황과 군부가 야마모토의 말을 따랐더라면 만주와 한국·필리핀·태국·미얀마 등의 독립은 늦춰졌을지도 모른다. 잘못된 판단과 독선, 합리적인 반대를 거부하면 결국 패가망신이란 값비싼 교훈을 얻게 되는 셈이다.

1주일 전 21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인 민주당이 60%를 점하며 압승했다. 한국·미국을 포함한 지구촌 전체가 ‘코드 블루’(code blue·위급상황) 패닉에 빠진 상황에서 치러져 관심을 모았다. 코로나19 사태 덕분에 이겼다는데 그게 진짜 이유인지는 궁금하다. 이제 여당은 2년 뒤 대선까지 거칠 게 없어졌다.

유일하게 국무총리를 두 차례 역임한 고 김종필 총재는 국민을 호랑이에 비유했다. 화가 나면 먹여주고 달래주고 길러주던 사육사까지 잡아먹는 존재라는 것이다. 정치를 ‘허업’이라고 규정한 그는 유권자의 변덕을 원망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공감 가는 말이다. 여당도 언젠가 실패할 수 있다. 지금 정부의 타협없는 무소불위 상황이 걱정된다. 경제 부문은 특히 우려스럽다.

해외에 살며 모국에 투표할 수 없는 입장이지만 총선 결과를 보며 도쿄 북부 도치기현의 닛코가 떠올랐다. 막부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무덤과 위패가 있는 도쇼구(동조궁) 신사의 3마리 현명한 원숭이 그림으로 유명한 곳이다. 뿌리는 중국신화에 바탕을 둔 유교 가르침으로 신비주의를 겸하고 있다. 나쁜 말은 듣지 말고, 나쁜 행동은 보지 말고, 나쁜 말은 하지 말라는 도덕적 내용이다.

주인공은 듣지 못하는 기카자루로 귀를 막고, 말하지 못하는 이와자루는 입을 닫고, 보지 못하는 미자루는 눈을 가리고 있다. 이들은 하늘의 감시자로 세상의 선악을 지켜보고 하늘에 다시 보고하는 역할을 한다. 귀가 들리지 않는 기카자루는 나쁜 행동을 한 사람을 본 뒤 눈이 보이지 않는 미자루에게 목소리로 전달한다. 미자루는 이 내용을 말 못하는 이와자루에 옮긴다. 모두 쓸데없는 것을 피하라는 교훈이다. 이들은 현명함 외에 신중함도 갖추었다. 겁쟁이·패배자로 악을 용인하는 것이 아니라 선악을 구별할 지혜를 가지라는 것이다.

인생은 늘 편한 것도, 고달픈 것도 아닌 부침의 연속이다. 시소 놀이와 비교할 수 있겠다. 역병 사태로 시민들의 패러다임도 점차 남을 의식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패턴으로 급속히 바뀌고 있다. 언행을 보다 신중히 하고 가려서 보며 현명히 판단해야 할 시점이다. 교훈은 꼭 비싸게 얻을 필요가 없다.


봉화식 디지털부 부장 bong.hwashik@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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