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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TALK] 고전을 대하는 자세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평소에 미뤄뒀던 일들을 찾아 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독서인데, 책을 읽는 것 자체에 대한 기대감도 있지만, 유학 시절 열흘 남짓 겨울방학 기간 책을 옆에 쌓아 두고 하나씩 읽어 내려갔던 추억이 있다. 3개월마다 몇 권이나 읽었는지를 헤아리며 나만의 뿌듯한 허세를 느끼기도 했다.

주가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는 넷플릭스에서 영화 ‘기생충’의 수상과 관련해 접하게 된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의 ‘아이리시맨’를 봤다. 로버트 드 니로와 알 파치노와 같은 거물급 배우들의 등장하고, 자그마치 3시간 30분이나 되는 러닝타임에 이를 정도로 무게가 느껴진다.

40여 명이 넘는 등장인물의 수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영화의 전반부에는 수많은 이름이 시대를 넘나들며 등장한다. 누가 누구인지, 악역과 우리 편의 구별도 어렵다. 미국 근현대사에 대한 배경이 없는 사람이라면 상황을 파악하다 영화를 포기해버리기 십상이다.

요즘 한국에서 주목을 받는 젊은 소설가 정세랑과 더불어 가장 많이 회자하고 있는 최은영 작가의 최근 단편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을 읽었다. 이전의 화제작이었던 ‘쇼코의 미소’를 통해서도 느꼈던 점이지만, 이 책 역시 인물을 섬세하게 배려하며 묘사하는 작가적 특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두 자매의 오해와 이해를 그린 이야기인 ‘지나가는 밤’, 그리고 레즈비언 커플의 만남과 이별을 현실과 이상을 오가는 갈등 속에 담백하게 그려낸 ‘그 여름’ 등을 포함한 일곱 편의 단편 소설을 묶어 냈다.



여러 단편 소설을 단숨에 읽다 보면 편마다 느꼈던 감정이입의 경계가 흐려지기 마련이다. 이경이 받은 문자는 은지가 보낸 것인지, 수이의 것인지, 그리고 주희와 윤희 중 누가 언니고 동생이었는지….

시대상을 반영하듯, TV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같은 경우도 인터넷을 염두에 둬서 제작하는 경우들이 많아졌다. 웹 드라마나 웹 예능은 짧게는 2~3분, 길어도 15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상대적으로 블로그의 인기는 시들었다. 사람들은 글이 길면 덮어 놓고 읽지 않는 경향이 커졌다. 스마트폰에 익숙해지면서 책을 멀리하게 되었고, 스콜세이지 감독 최고의 작품이라 평가를 받는 ‘아이리시맨’을 두고 길고 지루해서 못 보겠다는 감상평이 줄을 잇는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클래식 음악 중에서는 기본 러닝타임이 최소 서너 시간에 달하는 오페라나, 말러나 브루크너의 작품들은 연주 시간이 1시간도 넘기도 한다. 나이 40이 되어서야 교향곡을 쓸 수 있었던 브람스는 4곡의 교향곡을 남겼는데, 하나같이 큰 사랑을 받는 걸작이다. 당대 저명한 피아니스트였던 베토벤이 작곡한 5개의 피아노 협주곡은 완전무결함은 어떠한가. 헨델의 ‘메시아’와 더불어 최고의 명작으로 평가받는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에는 성서가 바라보는 인류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역작이다.

점점 쌓여만 가던 정보와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가 종반 부를 향하는 어느 순간부터 가파른 절벽 아래로 떨어지듯 엄청난 힘으로 관객의 집중력을 빨아들이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수많은 사건이 왜 지나갔으며, 어떤 인과 관계 때문이었는지, 또, 왜 이 영화는 길 수밖에 없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면 엔딩 타이틀이 올라가는 순간 가슴 한구석에 먹먹하게 남아있는 특별한 그 무엇을 경험할 수 있다.

때로는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긴 호흡의 고전을 대해야만 한다. 고전을 클래식이라 부르는 이유를 생각한다면 클래식 음악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배우게 된다. 이번 주말, 가장 미국적인 작곡가로 인정받는 조지 거슈윈이 쓴 ‘랩소디 인 블루’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알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그렇지만 알지 못했던 찰나의 연속들이 이 고전 속에 빛나게 놓여있었다는 사실을.


김동민 /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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