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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TALK] Z의 콤플렉스

1990년대에 대학을 다녔으니 필자는 X세대에 속한다. 삐삐로 불리던 무선호출기가 유행했고 공중전화에는 녹음된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 줄을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풍경을 쉽게 볼 수 있었던 시대이다. 워크맨이나 마이마이와 같은 신기기의 출현은 원하는 음악을 취사선택하고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고, 이에 따라 대중문화의 파급력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이전 세대보다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며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자유로움을 경험한 세대이기도 하다. 북한의 김일성 시대가 막을 내리며 철옹성과 같았던 반공 이데올로기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참사를 경험하면서 한국 사회의 과도기적 폐해를 돌아보게 되었던 시기도 이때이다.

시험 점수에 맞춰 최후의 순간에 전공을 결정하는 대부분의 경우와는 달리, 음악의 경우는 입시 수년 전부터 전공은 물론 진학할 학교의 윤곽까지 결정된다. 물론 동료 중에는 십수 년간 음대를 준비하다가 결국 영문학도의 길을 선택한 사람도 있고, 피아노에서 작곡으로 전공을 돌린 친구도 있다. 음악을 접한 경험이라고는 교회 고등부 성가대에서 노래한 것이 전부였던 지인은 입시 몇 달 전 교회 선배가 가르쳐 준 오페라 아리아 몇 곡 달달 외워 음대 성악과에 입성했고, 지금은 이름을 대면 알만한 스타 성악가가 되었다. 한 오케스트라 음악회에서 전반부에는 바이올린을 들고나와 생상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고, 후반부에는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여 클래식 음악 팬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유명 바이올리니스트도 있다. 이런 몇몇 예외들을 제외하고는 전공 특성상 최소 수년 전부터 어떤 분야를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므로, 예술중학교나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중학교 2학년이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정식으로 바이올린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멋모르고 예술고 입시를 도전했으나 보기 좋게 떨어졌다. 현악기나 피아노 전공은 대개 취학 전이나 늦어도 초등학교 저학년에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 낙방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3년 후 대학에 입학하고 보니 예술고를 졸업한 친구들이 대다수였다. 3년 혹은 그 이상 제대로 된 음악교육을 받아온 이들과는 달리, 일반 고등학교를 졸업한 필자의 경우는 대학에 들어와서야 처음으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한참 뒤처진 출발선에 선 후발 주자라는 자격지심이 느껴졌다. 지금은 독일의 한 교향악단 단원으로 일하고 있는 충북 청주 출신 동기 한 명과 유별나게 가까워질 수 있었던 이유도 당시 비슷한 위치에 있었다는 동료의식 때문이었다.

이 콤플렉스는 단순히 나보다 나은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과 위축을 뛰어넘어, 출신 학교의 지명도나 지도교수의 영향력, 나아가 도전했던 콩쿠르의 횟수나 순위 같은 수많은 경력과 경험들, 그리고 네트워크까지 포함한다. 필자는 이런 종류의 자격지심을 극복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대학 졸업 후 쏟아지는 수많은 비슷한 콤플렉스의 위협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게 했다.



밀레니얼 세대를 지나 요즘 젊은 층은 Z세대로 불린다. 스마트기기와 SNS에 능숙하고, 인종이나 지역, 문화에 대한 구별이 불분명하다. 이들의 뚜렷한 개인주의적 성향은 사회가 결정해 놓은 유행이나 유명세를 따라가기보다는, 자신에게 더 어울리는 것을 추구하고 선택한다. 하나를 깊이 파고드는 것보다는 얇더라도 넓고 많은 것을 습득한다. 글로 읽는 것보다 영상에 익숙하고, 직접 만져보며 경험하는 것을 중요한 가치를 둔다.

X세대였던 필자는 자격지심을 태우고 콤플렉스와 싸우는 것이 화두였다. 대학이라는 시스템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자양분을 공평하게 제공했다. 코로나19 시대와 마주한 Z세대 젊은이들이 맞이한 위기는 어떠한가. 졸업이라는 관문으로 빠져나온 이들 앞에 모든 통로가 막혔다. 떠밀려 또 다른 출발선 앞에 던져진 희대미문의 시대적 콤플렉스를 이들은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김동민 /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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