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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시위 진압의 상흔

1979년 1월부터 1981년 4월까지 전투경찰 52기로 복무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을 시작으로 전두환 정권이 집권하기까지의 시기였다.

상부 명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해야만 했던 경찰로 근무하면서 엄청난 사건을 체험했다. 갑작스러운 대통령의 유고로 대학에서는 긴급조치 해제를 요구하는 데모가 연일 이어졌다.

경찰에 진압 기동병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심지어 국내 외국대사관 근무자들까지 진압장비 없는 비무장으로 진압에 투입될 정도다. 시위대의 화염병과 돌멩이, 죽창에 맞서야 했다.

서울 한복판 남대문 앞에서 동기는 시위대가 언덕 위에서 굴린 시내버스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전남도청 기동타격대 근무 도중 시위대의 총탄에 쓰러지는 전우들을 남겨두고 탈출했던 동료는 작은 빗방울 소리에도 이불을 덮어쓰는 공포증 환자가 됐다. 지금도 화염병과 화상에 일그러진 얼굴로 생활하고 죽창에 눈을 잃고 고통과 장애로 살아가는 전우들이 있다.



12·12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전두환은 삼청교육대를 만들었고, 단속과 교육대 호송에 전경들이 지원을 나가기도 했다.

5월이 되면 전라도 광주에선 민주 투사들을 기리는 성대한 기념식이 열린다. 나라를 지키려 군대 갔다가 명령에 의해 본의 아니게 진압군이 돼야만 했고 결국 목숨까지 잃었던 군경들의 영혼도 달래주면 좋겠다.

그들은 지금 언론과 사회적 관심에서 소외돼 있다. 단지 명령에 의해 임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들의 죽음은 잊혀지고 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죽음을 맞은 우리 이웃의 불행한 영령들이다.

역사는 이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다시는 이런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길 바라며 더욱 발전하는 대한민국이 되길 소원한다.


김지형 / 중앙국악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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