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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앤 테크놀로지] LED 전구와 현대미술

1879년 토마스 에디슨이 뉴저지 멘로 파크에서 백열전구를 처음 선보인 후 고종 황제도 이 새로운 발명품에 관심을 보였다. 그리하여 1887년 백열등이 처음 건청궁에 설치되었고, 이후 점차 전구 도입이 활성화되어 1970년대 가서는 집집마다 전기가 안 들어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농촌까지 광범위하게 보급되어 생활의 불편이 크게 해소되었다. 하지만 산업을 우선시하는 경제개발의 분위기 속에서 가정에서나 미술 작품 제작에 전력을 많이 소모되는 것은 비용의 부담뿐 아니라 사회적 우려를 낳았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개발된 LED 전구는 이런 단점을 보완하여 1990년대 후반부터는 현대미술에, 그리고 생활 속에서도 많이 활용하게 되었다.

Jenny Holzer, ‘기울어진 파랑 보라(Blue Purple Tilt)’, 2007, seven LED signs, 152.4" x 145.6" x 62.5"(387.1 x 369.8 x 158.8 cm). Text from Jenny Holzer, Truisms, 1977~79 ⓒ 2020 Jenny Holzer, member/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Digital image, Jenny Holzer Studio, New York

Jenny Holzer, ‘기울어진 파랑 보라(Blue Purple Tilt)’, 2007, seven LED signs, 152.4" x 145.6" x 62.5"(387.1 x 369.8 x 158.8 cm). Text from Jenny Holzer, Truisms, 1977~79 ⓒ 2020 Jenny Holzer, member/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Digital image, Jenny Holzer Studio, New York

제니 홀저(JennyHolzer, 1950~)와 브루스 나우만(Bruce Nauman, 1941~)은 전자 LED 사인이나 네온 튜브를 사용하여 정치 및 시사 이슈에 대한 강력한 문구를 관객들에게 전달했다. 그들은 팝아트와 광고의 형식을 사용해 압도적인 시각적 자극, 그리고 반복적인 메시지 전달로 사람들을 흡입시키는 현대 마케팅 캠페인의 메커니즘을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느낌으로는 네온 튜브 같지만 아주 작은 전자 LED 전구를 여러 개 넣어서 네온 튜브 사인을 재현하는 방법을 작가들이 선호하게 되었다. ‘빛을 내는 반도체, 혹은 발광 다이오드(Light Emitting Diode)’라고 불리는 LED 전구는 2mm 정도의 소형 입자로도 제작할 수 있어서 사실상 어떤 형태의 이미지에도, 또 어떤 색으로도 설치가 가능하다. 대표적인 작품이 제니 홀저의 2007년 작 ‘기울어진 파랑 보라(Blue Purple Tilt)’이다. 런던의 테이트(Tate) 모던 아트 미술관에 전시된 이 작품은 4m에 달하는 일곱 개의 LED 문자 사인이 정치적 구호 같은 반복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홀저는 짧은 경구를 모아서 트루이즘(Truisms)이라는 제목으로 텍스트를 창작하였고 문자 사인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LED 전구는 열 발생이 매우 적어 다른 형태의 전구보다 수명이 수백 배 길다. 그래서 1970년대 초기에 만들어진 LED 전구가 현재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을 정도이다. 덴마크 출신 올라프 엘리아슨(Olafur Eliasson, 1967~)의 해바라기 모양의 LED 전구 작품 ‘작은 태양(Little Sun), 2012’는 현재 26.65달러에 전 세계적으로 판매되고 있다. 뒷면에 태양전지를 장착한 노란 꽃 모양의 이 LED 전구는 백만 개가 넘게 팔렸는데, 이 중 육십만 개는 전기 공급이 되지 않는 아프리카 시골 마을에 보내졌다. 하나를 사면 그 수익금으로 전기 없는 가정에 하나를 기증하는 식으로 사회사업을 동반한 미술 프로젝트가 되었다. 영어로 ‘전력(power)’은 ‘권력’을 의미하기도 하기에, 어두운 밤 불을 밝히고 공부를 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은 모두에게 희망을 불러일으킨다.



1960년대 시작된 ‘빛과 공간의 예술 운동(Light and Space Movement)’의 주요 인물 제임스 터렐 (James Turrell, 1943~)은 수천 개의 LED 전구를 케이블을 따라 설치하고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색깔의 변환 등을 조작하는 작품을 만들었다. 나선형의 로톤다형 전시장에서 초록, 보라, 빨강 등의 겹쳐진 원형의 변화를 하늘을 바라보듯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게 했다. 그의 ‘아텐 레인(Aten Reign)’이라는 작품은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디자인한 독특한 원형 미술관에 꼭 맞도록 제작되어 태양신을 상징하는 이집트의 태양원반(아텐이라고 부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원래 로톤다의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의 태양 광선과 수천 개의 LED 전구로 조작된 색깔이 함께 어우러져 뜻밖의 종교적 숭고미와 초월성을 관객이 몸소 체험하게 했다.

제니 홀저는 2019년 후반기 국립현대미술관의 과천과 서울 전시관에서 ‘당신을 위하여(For You)’라는 주제의 설치미술을 선보였다. 다섯 명의 현대 문학 작가의 작품에서 발췌한 문장이 연필 같은 직사각형 기둥의 네 면을 따라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나타났다 사라지는 작품이었다. 또 미국 설치미술 작가 레오 빌라리엘(LeoVillareal, 1967~)은 2017년 아모레 퍼시픽 사옥의 야외 정원에 ‘무한의 꽃송이(Infinite Bloom)’를 전시했었다. 삭막한 도시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건물 한복판에 오아시스처럼 자리한 야외 정원에다 만발한 화초 대신 별처럼 빛나는 꽃 모양의 전구를 설치한 것이었다.

반짝이는 수만 개의 전구로 자연의 사물을 재현하고 신적인 숭고함에 다다르게 한다는 점, 그리고 그 수많은 전구는 작품의 컴퓨터 프로그램을 디자인한 미술 작가의 손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작동한다는 점에서 인간이 ‘창조’의 주체가 될 수도 있나, 라는 질문까지 하게 된다.

1990년대 후반 신호등 정도로 고개를 내민 LED 전구는 채 30년도 안 돼 우리에게 압도적인 대상이 되었다. 2050년 우리는 어떤 전구에 열광하게 될지 궁금할 따름이다.


변경희 / 뉴욕주립대 교수·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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