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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TALK] 얼음공주의 콘서트

십수 년 전 예술의전당의 초청으로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를 지휘했다. 여름 방학 기간 어린 청중들과 부모를 대상으로 열린 공연이었기 때문에, 이해를 돕기 위해 독일어 가사 대신 한국어로 번역해 무대에 올렸다. 꽤 많은 횟수를 공연했는데 전 회가 매진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매 공연의 시작은 관객들을 환영하기 위해 파파게노가 무대에 등장했다. 작품의 주인공이 화려한 복장 차림으로 나타나 인사할 때 쏟아지던 어린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유학 시절 알게 된 피아니스트 최 선배는 남다른 재능으로 독일과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지적인 연주를 펼치는 음악가로 평가받으며 지금은 한국의 대표적인 피아니스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근 최 선배로부터 두 아이를 양육하는 피아니스트 엄마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작곡가와 작품을 들려줄 때 아이들의 반응이 흥미롭다는 내용이었는데, 이 선배가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인 브람스의 ‘독일 진혼곡’을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무서워하고 슬퍼한단다. 이 곡이 죽은 영혼을 위로하는 ‘진혼곡’ 임을 알 수 없을뿐더러, 독일어 가사를 이해하지도 못했을 터인데 아이들의 반응이 신비롭다. 반면 베토벤의 작품을 들려주면 열에 아홉은 호불호가 갈린다고 한다. ‘이건 좋고, 저건 싫고’가 분명하다는데, 생각해보니 캐릭터가 선명한 작곡가의 성향이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투영된다는 것이 놀랍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가 있는데, 바로 모차르트. 언제 어떤 곡을 연주해도 모차르트 작품은 항상 좋아하고, 엄마에게 더 연주해달라고 와서 말하기까지 한다는 것. 브람스나 베토벤보다 진입장벽도 낮고, 바흐보다는 덜 구조적이고 유연하게 들릴 수 있는 작곡가라서 아이들의 감성도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닐까.

번스타인이 1958년에 청소년 음악회 TV 시리즈를 시작한 이후, 세계 대부분의 악단은 어린이들을 위한 음악회를 개최하고 있다. 뉴욕 필하모닉은 연령을 더 낮춰 부모를 동반한 Very Young People‘s Concert를 열고 있다.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악기들을 각 그룹으로 나눠서 소개하고 아이들에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시리즈 음악회다. 스위스의 대표 악단 중 하나인 취리히 챔버 오케스트라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갔다. 태교 음악회라고도 할 수 있는 임산부 음악회가 그것이다. 이 정도면 엄마를 위한 일반 음악회인지, 배 속의 아이를 위한 어린이 음악회인지는 모르겠지만, 오케스트라가 목표하는 지점은 분명하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경험하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악단의 책임이라고 느낀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클래식 공연은 연령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특별한 기회를 만드는 것으로 다음 세대들을 위한 기회를 창의적으로 만들고 있다.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평가받는 힐러리 한은 두 아이의 엄마이다. 차갑고 이성적인 그의 성격과 연주 스타일 때문에 붙은 ’얼음공주‘라는 별명과는 달리 그는 종종 베이비 콘서트를 연다. 먼저 넓은 공간에 패드를 깔아 아이들이 마음 놓고 기어 다닐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그리고는 헤엄치는 아기들 앞에서 악기를 꺼내 연주를 시작한다. 음악과 상관없이 엄마와 꽁냥거리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지만, 신기한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꼿꼿하게 고개를 세우고 뚫어지라 바라보는 아이들과 눈을 맞춰가며 연주한다.

이런 연주는 부모로서도 긍정적인 경험이 되고, 음악가로서도 배움이 된다는 힐러리의 말은 다음 세대를 위한 음악교육이 왜 ’책임‘의 수준에만 머무르지 않음을 가리킨다. 다음 세대를 위한 음악회는 수혜자도 공급자도 상생할 수 있도록 만드는 좋은 장이다. 아이들은 소리를 듣고 반응하는 존재이다. 이들이 들음을 통해 아름다움을 알아가는 것만큼 숭고한 배움이 또 있을까. 이 책임은 우리가 모두 나눠야 할 짐이다.


김동민 / 뉴욕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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