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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세상은 ‘사지선다형’이 아니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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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20/09/25 미주판 21면 기사입력 2020/09/24 18:41

이어령 선생의 강연을 유튜브로 듣는다. 강연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80대 후반의 나이로, 그것도 암과 함께 지내는 노인네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정정한 자세,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긴 시간 꼿꼿하게 서서 열정적으로 강연하는 모습만으로도 뭉클하다. 감동적이다.

강연 내용도 젊은이들보다 훨씬 젊고 싱싱하고 재미있다. 날카로운 현실 비판과 유머도 풍부하고 웃다 보면 서글퍼지는 내용도 많다. 예를 들어 간추려보면 이런 식이다.

“요새 아이들은 학교에서 사지선다형 문제를 푸는 교육만 받고 자란 탓에 나중에 커서 맞선을 볼 때도 상대가 1명이면 선뜻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데 상대가 4명이 나오면 익숙하게 그 중에서 한 명을 고른다.”

이야기를 들으며 처음에는 웃었지만 이내 심각하고 서글퍼졌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 것이다. 과연 나는 학교에서 무엇을 어떻게 배웠는가. 학교 교육은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나 역시 국민학교(초등학교가 아니다) 때부터 사지선다형 문제와 OX 문제를 풀며 자랐다. 물론 단답형 문제나 서술형 시험도 더러 있기는 했지만 주로 배운 것은 고르기, 정해진 답 가려내기였다. 그 정답이라는 것을 누가 정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정해진 답을 찾아 방황했다.

가령 “얼음이 녹으면 ( )이 된다”는 문제에 ‘물’이라고 쓰면 정답이고 ‘봄’이라고 적으면 틀린 답이 된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라는 시 구절의 짐승은?”이라는 질문에 문과반 학생들은 ‘사슴’이라고 답하고, 이과반은 대체로 ‘기린’이라고 적는 식이다.

아무튼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고 교과서를 달달 외우건, 눈치로 때려잡건 정답 고르기에 숙달된 교육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보니 세상은 전혀 사지선다형이 아니고, 인생은 OX 문제가 아니었다. 정답 같은 것은 어디에 숨어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네 가지 중 하나를 고른다고 되는 일은 별로 없거니와, 그런 거 잘 고른다 해도 그런 실력으로는 중간도 하기 어려웠다.

결국 학교에서 배운 것은 달달 외우기, 누군가가 정해 놓은 정답 고르는 요령 익히기 뿐이었다. 지식과 지혜의 구별조차 없었던 셈이다. 바람직한 교육이란 지혜를 깨우치도록 이끌어주는 것일 텐데 지식만 잔뜩 주입시킨 것이다.

우리 교육은 그렇게, 시험 잘 쳐서 성적 좋은 놈이 출세하는 세상을 만들었다. 인간을 성적순으로 줄세우기 하는 세상에서는 시험 잘 치는 재주를 가진 놈이 출세하게 마련이다. 고시에 합격해서 세도 당당한 법조계의 영감님이 되고,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승승장구한다.

그런데 문제는 지식 많고 시험 잘 치는 것은 지혜나 인간성, 인격처럼 우리 삶의 바탕이 되는 본질적 덕목과는 별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반대인 수가 많아 보인다.

서경식 교수가 쓴 ‘학교 교육에 오염된 지식인’이라는 표현에 공감한다. 소설가 최인호 선생의 난 사람, 든 사람, 된 사람 같은 말도 실감이 된다.

그런데 교육을 잘 못 받았다고 이제 와서 한탄하면 무얼 하나. 화를 내고 후회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이제부터라도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다른 길은 없다. 좋은 책 찾아 읽고, 좋은 음악 듣고, 좋은 말 듣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늘 애쓰고… 그것이 바로 인문학 공부다.

따지고 보면, 공부나 교육이란 스스로 평생 하는 것이다. 스스로 깨우치고, 스스로 자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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