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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수] "외눈으로 보니 안 보이던 세상이 보였다"

[LA중앙일보] 발행 2020/11/06 미주판 6면 입력 2020/11/05 20:38 수정 2020/11/05 20:41

남기고 싶은 이야기 - 민병수 변호사
<14> 교육자로 돌아가다

세계에 흩어져 뿌리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육자들의 상호교류와 디지털 교과서 개발을 목적으로 지난 2009년 10월 창립된 세계 한인교육자총연합회(IKEN)의 발기인 대회 모습. 아래 오른쪽 세번째가 민병수 변호사. [중앙포토]

세계에 흩어져 뿌리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육자들의 상호교류와 디지털 교과서 개발을 목적으로 지난 2009년 10월 창립된 세계 한인교육자총연합회(IKEN)의 발기인 대회 모습. 아래 오른쪽 세번째가 민병수 변호사. [중앙포토]

한쪽 눈만으로 왕성한 활동
한국어 교재 만들기도 앞장
출판비 없어 사방에 손벌려


민병수 변호사의 트레이드 마크가 있다. 바로 타이맥스(Timex) 손목시계다. 아메리칸 드림을 찾는 이민자 커뮤니티에서는 로렉스 시계가 성공과 부의 상징이다. 하지만 민 변호사는 굳이 이 시계를 차고 다녔다. 토종 미국 브랜드인 타이맥스 시계는 가격대가 100달러 미만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품질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아 빌 클린턴과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애용했다.

“커뮤니티 활동은 돈을 벌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타이맥스 시계를 차고 다녀도 괜찮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함께 일하러 오라고.” 커뮤니티 봉사에 대한 민 변호사의 생각은 이처럼 확고했다.

2009년 7월 15일. 3년 동안 물밑작업 끝에 샤토가와 윌셔 불러바드에 세워진 학교 이름을 김영옥중학교로 부르는 명명안이 통과된 후 얼마 되지 않을 때다. 한국 정부 관계자가 민 변호사에게 만남을 청했다. 미팅 장소에 가니 다른 한인도 있었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이 자리에서 “2세들이 한국어를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는 교과서를 개발하기 위해 단체를 설립하려고 한다”며 민 변호사에게 창단 멤버로 참여해 달라고 부탁했다. 민 변호사는 교사직을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나 자격이 없다며 거절했지만, 그냥 참여만 해달라고 간곡히 요청을 받자 수락했다. 세계한인교육자총연합회(IKEN)의 시작이었다.

암 수술 후 옥스퍼드팔래스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한(왼쪽부터) 민병수 변호사가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막내아들 랠프 안씨, 첫 한인 주상원의원인 알프레드 송 변호사의 큰딸 레슬리 송씨와 함께 한 모습. [사진=민병수 변호사 제공]

암 수술 후 옥스퍼드팔래스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한(왼쪽부터) 민병수 변호사가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막내아들 랠프 안씨, 첫 한인 주상원의원인 알프레드 송 변호사의 큰딸 레슬리 송씨와 함께 한 모습. [사진=민병수 변호사 제공]

적금까지 깬 나 부회장

지금은 인터넷의 발달로 한국어 교육 환경이 많이 달라졌지만 201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내 한글학교에 보급되던 한국어 교재는 한국의 교과과정을 중심으로 제작돼 학습 내용이 미국의 교육 시스템과는 잘 맞지 않았다. IKEN의 목표는 미국 학교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한국어 교재를 디지털로 개발해 이를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보급하는 것이었다. 민 변호사가 발기인으로 참여하면서 한인 교육자들과 단체장들도 속속 창단 멤버로 들어왔다. 민 변호사는 전국한인회장 협회장이던 김승리 시애틀한인회장과 초대 공동회장을 맡다가 1년 뒤 2대 회장으로 선출된다.

IKEN은 한국어 교사들을 모아 디지털 한국어 교재 제작에 들어갔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교과서 제작 경험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이러저러한 시행착오를 거쳐 거의 2년 만에 킨더가튼부터 8학년용 교과서가 완성됐고, 디지털 출판을 맡은 제작사에 작업을 맡겼다.

하지만 설립 초창기 약속했던 정부의 지원금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당장 출판비로 2만 달러가 필요했다. 출판비 외에도 들어가는 비용은 끝이 없었다. 교과서 제작 초기에 적잖은 돈을 후원했던 김승리 초대 회장은 결국 물러난다는 의사를 밝혔다. 민 변호사도 사재를 털어 보탰지만 역부족이었다. 민 변호사는 함께 일하던 나영자 IKEN 부회장과 함께 아는 사업가들을 찾아다니며 후원금을 요청했다. 고석화 뱅크오브호프 명예회장, 토마스 정 전 나라은행 이사장을 비롯해 김송부씨, 김영환씨 등이 수표를 써줬다.

민 변호사는 “나 부회장이 가입했던 적금을 깨서 출판비를 지급해 무사히 교재가 나왔다. 그 돈은 나중에 정부에서 후원금이 들어올 때 맨 먼저 갚았다”며 "IKEN을 하면서 돈을 엄청 구걸하러 다녔다. 여러 선생님이 고생하면서 교재를 만든 걸 알기에 나 몰라라 하고 혼자 떠날 수 없었다. 그때 도와주신 분들에게는 지금도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IKEN에서 발간한 디지털 교재는 지금도 IKEN 홈페이지(www.ikeneducate.org)에 가면 다운받아 사용할 수 있다.

판사와 농담 “애꾸눈 됐다”

탈 많았던 IKEN 디지털 교재도 완성된 2010년 말쯤이다. 왼쪽 눈 아래가 불그스레 변하고 볼록해졌다. 처음에는 벌레에 물렸나 싶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시력까지 점차 불편해졌다. 주치의를 찾아가자 ‘단순한 종양 같다’며 항생제를 처방했다. 주치의 말만 믿고 한 달이 넘게 꾸준히 약을 먹었지만 증세는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안 되겠다 싶어 수소문해 안과 전문의를 찾아갔다. 민 변호사의 눈을 정밀검사한 안과 전문의는 심각한 얼굴로 조직검사를 제안했다. 2011년 3월이었다.

“안구암 진단을 받고 한쪽 눈을 잃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솔직히 두려웠다. 한 눈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게.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인지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다. 왜 내가 암에 걸리면 안 되나. Why not me?”

그 해 여름 그는 왼쪽 안구를 적출하는 암 수술을 받았다. 수술하고 퇴원한 사흘 후에는 오렌지카운티 지역 법원에 계류 중인 케이스를 진행하기 위해 법원에 출두했다. 민 변호사는 “법정에서 판사가 눈에 붙인 반창고의 용도를 물어 ‘애꾸눈이 됐다’고 말하니 다들 농담인 줄 알고 웃더라. 나도 같이 웃었다”고 들려줬다.

민 변호사는 암이 발생하던 전과 다름없이 책을 읽고, 자동차를 운전하고, 변호사 업무를 보면서 커뮤니티 활동도 계속 이어갔다. 6개월이 넘게 걸린 항암 치료도 민 변호사 특유의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생각과 태도로 이겨냈다. 항암치료가 끝나고 나서는 버몬트와 버질 인근에 신축 중인 초등학교에 의사이자 올림픽 다이빙 금메달리스트인 ‘닥터 새미 리’의 이름을 붙이기 위해 다시 물밑 작업에 들어갔다. 찰스김초등학교에 이어 김영옥중학교 명명 작업을 함께 한 2세들과 다시 뭉쳤다.

한인 이름 학교 100년 대계

한국인의 이름을 딴 초·중·고등학교를 미국에 세우는 건 명실공히 100년 앞을 내다본 교육 프로젝트다. 이민 1세들은 떠나도 학교의 이름은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0년대 한인 이름을 명명한 학교가 줄줄이 탄생하자 타 아시안 커뮤니티도 한인 커뮤니티를 부러워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특히 윌셔 불러바드와 6가 사이의 샤토에 세워진 중학교에 김영옥 대령의 이름을 명명하는 프로젝트가 통과하기까지는 무려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닥터새미리 매그닛 초등학교를 준비할 때는 암 수술과 항암 치료로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친 때였다. 그러나 민 변호사는 차분하게 자료를 준비했다. 또 지역구 재조정 관련 공청회에도 빠짐없이 다녔다.

“한 눈으로 보는 세상은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그동안 내가 보던 사물의 중심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감사한 건 한 눈으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면서 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됐다. 그래서 귀한 삶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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