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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수] "커뮤니티 권익은 끈기있게 요구하고 챙겨야"

남기고 싶은 이야기 - 민병수 변호사
<15·끝> "나는 영원한 현역"

미주 중앙일보와 남기고 싶은 이야기 인터뷰를 마친 민병수 변호사와 캐롤 민 부부. 김상진 기자

미주 중앙일보와 남기고 싶은 이야기 인터뷰를 마친 민병수 변호사와 캐롤 민 부부. 김상진 기자

약자에게 위로와 희망 주고
포용과 나눔의 리더십 필요


민 변호사는 2011년 6월 안암 수술 후 항암 치료를 마친 후에도 그다음 해 6월 목 근처 림프종 수술을 받았다. 2년 전에는 또 턱에서 암세포가 발견돼 다시 한번 수술을 받아야 했다. 민 변호사는 세 번 째 수술을 받기 전 어쩌면 신경을 다칠 수 있어 말을 할 수 없게 될 수 있다는 의사의 경고를 받았지만, 무사히 수술을 받고 회복했다. 여전히 현역 형사법 전문 변호사로 활동 중인 민 변호사는 최근 들어 업무량을 조금씩 줄이는 중이다. 하지만 사무실도 정기적으로 출근하고 문의 전화도 계속 받고 있다.

“대부분은 무료로 상담해주고 중요한 케이스만 진행하고 있다"는 민 변호사는 “흔히들 변호사는 돈을 잘 버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나는 돈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일이 재미있어서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민 변호사 주위에는 청소년 시절 일으킨 각종 사건으로 상담을 받았다가 지금은 새 삶을 사는 한인들이 꽤 있다. 그중에는 잘 나가는 사업가도 있고, 변호사가 된 이들도 있다. 민 변호사가 교사 시절 지도했던 학생들도 가끔 찾아온다.



“케이스가 끝났다고 돌아서지 않고 젊은 의뢰인이라면 등이라도 한번 두드려주고 격려했다. 희망을 보여주면 그들의 인생이 바뀌기 때문이다. 교사 시절에도 아이들에게 격려를 많이 했었다. 그 기억이 평생 가는 것 같다.”

음악독서, 할아버지의 삶

민 변호사의 거실에는 소파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마호가니 책상, 또 한쪽에는 대형 스피커를 갖춘 오디오 세트가 설치돼 있다. 민 변호사는 클래식 음악의 대가다. 바이올린 선율만 듣고도 연주자를 맞출 만큼 음악을 즐겨 듣는다. 사무실에 나가지 않을 때는 거실 소파에 앉아 독서에 푹 빠진다. 아내 민씨와 손을 잡고 거주하는 알함브라 동네를 한 바퀴 도는 산책도 요즈음 느끼는 즐거움 중의 하나다.

두 손자에 대한 사랑도 끝이 없다. 현재 캘스테이트풀러턴에서 미디어 프로듀서로 근무하고 있는 민 변호사의 큰아들(크리스) 때문에 멀리 떨어져 사는 며느리와 손자들을 자주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코로나19팬데믹으로 결혼식을 늦춘 둘째 아들(팀)은 영화 주인공들의 의상이나 자동차 등을 디자인하는 3D디자이너로 할리우드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다. '블랙팬서’의 영웅 채드윅 보스만이 입은 의상을 비롯해 영화 스파이더맨, 스크림, 한국영화 인랑 등에 참여했다.

팬데믹으로 많이 줄었지만,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만난 지인들과 전화하고 가끔 만나 식사하는 시간도 행복하다. 김영옥중학교명명안을 추진할 때 늘 장소를 빌려주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카페 맥 조니 박 전 사장도 그 중 한 명이다.

“죽어서 아버지를 만났을 때 '최선을 다했구나. 내가 해야 할 일을 네가 했구나’ 말해주는 칭찬을 듣고 싶다. 미래에 내 손자들이 나를 떠올리며 최선을 다해 살아준다면 그걸로 내 인생은 행복한 것이다.”

50년 커뮤니티 봉사 큰 보람

전세계의 관심이 쏠린 미국 대선일이던 지난 5일. 민병수 변호사는 아내 캐롤 민씨와 함께 자정이 넘도록 TV로 선거 결과를 지켜봤다. 유망한 한인 2~3세들의 정계 진출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도운 민 변호사는 “연방의회와 내각에 진출하고 도전하는 한인들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2011년 한인타운 선거구를 단일화시키는 ‘선거구 재조정’ 캠페인 실패 후 LA지역 정치에 도전한 한인들이 늘었음을 그 예로 들었다.

민 변호사는 “나는 지금도 필요하다면 선거구 재조정을 위해 또 싸울 것“이라며 ”민권 문제는 실패 없이 성공도 없다. 실패해도 계속 부조리함과 싸워야 한다. 이제 한인사회는 돈도, 영향력도 갖췄다. 끈기를 갖고 집요하게 우리의 권리를 주류사회에 주장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뢰인을 위해서라면 상대방에게 무릎을 꿇는 것도 피하지 않았던 민 변호사는 “한인 커뮤니티 대변인으로 나갈 때는 당당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며 “다음 세대는 침해하고 뺏는 리더십이 아니라 서로 돕고 함께 번영하는 리더십이 중요하다. 태평양 동쪽(한국)과 서쪽(미주 한인)의 리더십이 합쳐져 새로운 시대를 맞는 날이 50년 안에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는 비록 못 보고 가지만 아쉽지 않다. 사는 동안 최선을 다했고 이때까지 서러움은 다 씻고 간다. 행복한 삶이었다.”

*남기고 싶은 이야기 '민병수 변호사' 편은 이번 회로 마무리 됩니다.

◆미국 정계 진출 한인들
장원배·필립 민·신호범·알프레드 송…


미주 한인들의 정계 진출 역사는 한인 이민사가 시작된 하와이주에서부터 출발한다. 1958년 장원배씨와 필립 민씨가 하와이주 하원의원에 당선된 후 1990년 3세인 고 재키 영씨가 첫 한인 여성 주 하원의원으로 활동한다. 1998년에는 주하원의원으로 입성해 22년간 의정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실비아 루크 장(한국명 은주) 의원이 있다. 장 의원은 한인 현직 정치인으로는 최장수 정치인이다. 또 주하원의원 2년, 하와이 시의원 14년, 주상원의원 15년 활동 경력을 가진 도나 메카도 김 전 의원, 3선을 성공한 샤론 하 주하원의원이 있다. 타주에는 입양아 출신의 플로리다 주하원의원 미미 맥앤드류, 오리건주 임용근 주 상원위원(5선), 워싱턴주 신호범 주상원위원(4선) 등이 꼽힌다.

캘리포니아주 정계에 한 획을 그은 이는 알프레드 송씨다. 1960년 몬트레이파크 시의원으로 당선된 후 주 하원과 상원의원을 역임하며 가주 의회에 진출한 최초의 아시아계 이민자로 이름을 남겼다. 그의 이름은 ‘알프레드 송 스테이션’으로 명명된 LA한인타운 윌셔-웨스턴 메트로 역 앞에 세워진 기념비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90년에는 다이아몬드바 시의원으로 당선된 김창준 의원이 2년 뒤 연방하원에 진출하며 ‘첫 한인 연방 하원의원’ 기록을 세웠다. 같은 해 오렌지카운티 가든그로브 시의회에 정호영 시의원이 나왔고 2004년에는 최석호·강석희씨가 어바인 시의원으로 동반 당선됐다. 2007년에는 한인 여성으로 처음 미셸 박 스틸씨가 가주 조세형평국 의원으로 당선됐으며, 이후 오렌지카운티 수퍼바이저 위원을 거쳐 올해 연방의회에 입성했다. 또 다른 여성 정치인으로는 가주 하원의원을 거쳐 연방의원으로 출마한 영 김씨가 있다.

2015년에는 데이비드 류(4지구)씨가 한인 최초로 LA시의원으로 선출됐으며, 2019년에는 존 이(12지구)씨가 2번째 한인 LA시의원으로 뽑혔다.


장연화·장수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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