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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분갈이

화분의 잡초가 오히려 주인 노릇을 하려 한다. 지난 여름 내내 물만 뿌려주고 잔손질을 못해준 일이 마음에 걸린다. 상식도 열정도 없이 손쉽게 만난 나무모를 들고 와서 화분에 꽂아 놓은 분재 아닌 분재가 백여 그루가 넘는다. 그새 자리잡은 잡초의 뿌리가 깊게 파고들어 고래 심줄이다.

흙을 털어내며 잡초뿌리를 추려내다 소스라치게 놀란다. 손가락 굵기의 지렁이가 꿈틀 손등을 친다. 낚시터에서다. 떡밥 미끼를 달아 멀리 던지고 잔물결에 풍류를 읊는데 반나절이 훌쩍 지나도록 붕어는 인사조차 않는다. 마지못해 지렁이로 바꾸어 달자 미끼가 바닥에 닫기 전에 찌를 낚아챈다. 낚시꾼이라면 물고기가 좋아하는 미끼를 달아야 한다는 진리를 잊다니.

겨울은 어김없이 춥다. 생각하고 느끼고 그리는 80생의 머리와 가슴과 마음이 부끄럽고, 후회되는 일들만 끄집어내 추위를 타게 한다. 세상살이 함께 어울리며 살아왔는데 자랑스럽게 내놓을 것이 없고, 마음 가다듬어줄 시 한 줄 떠오르지 않아 아쉽고 민망하다.

모든 생물은 물에서 시작해 바람과 햇빛과 영양분과 함께 해야 꽃이 피고 벌과 나비와 어울려 열매를 맺는다. 물이 모자라면 말라버리고 빠지지 않으면 뿌리가 썩는다.



나무의 마음 씀씀이가 부럽다. 잡초와 더불어 불평 없이 지내고 있다. 사람이나 동물의 해코지를 받아도 너그럽게 용서한다. 차원 높은 영혼의 세계를 한 차례 거쳐 왔는지도 모르겠다.

맑은 머리와 뜨거운 가슴과 부드러운 사랑을 이루는 새해가 되기를 기원하며 겨울잠에 든 나무들이 고운 꿈을 꾸도록 분갈이를 한다.


지상문 / 파코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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