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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업 없는데 아파트 공사 … 입주일 어떻게 맞추나”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9/12 08:04

경총 ‘주 52시간’ 심포지엄
방송업 “내년 도입 땐 인력 반토막”
조선업 “해상서 근무 교대 어쩌나”
IT업계 “출퇴근 시간 따로 없는데”
전문가 “유연근무제로 보완해야”

“계약 후 공사가 진행 중인 상태에서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됐다. 아파트 입주 예정일은 정해져 있다. 근로시간이 단축됐지만 사람을 더 투입할 여력도 없고, 공사가 늦어지면 또 손해가 발생한다.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을지 걱정이다.”

“미니시리즈 16부작 제작 기간이 100일, 회당 제작비는 5억원 정도다. 그러나 방송제작업에 대한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7월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되면 제작 편수는 반 토막이 나고, 스태프의 일자리도 반이 줄 것이다. ‘저녁 있는 삶’ 대신 ‘일자리 찾아 헤매는 삶’이 되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12일 개최한 ‘근로시간 단축 현장 안착을 위한 정책 심포지엄’에서 나온 발언들이다. 이날 심포지엄엔 조선·건설·방송 제작·IT 업계 관계자가 참여했다. 이들은 주 52시간 “주 52시간 근로제가 획일적이고 성급하게 도입되며 현장에서 큰 혼란이 생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심포지엄에서 현장 사례 발표에 나선 정석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상무는 “조선업종 특성상 고숙련 기술자의 연속작업이나 집중업무가 필수적인 측면이 있다”며 해상 시운전이나 해외 해양플랜트 사업 등을 예로 들었다. 그는 “대우조선해양이 최근 건조한 액화천연가스(LNG) 쇄빙선은 북극해로 직접 가서 3개월가량 해상 시운전을 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선 근로자 교대가 어렵고 무턱대고 승선근로자를 늘리면 안전사고의 위험이 커진다”고 말했다.

또 인력을 더 뽑는 것도 현재로선 어렵다고 덧붙였다. 정 상무는 “높은 기량을 갖춘 숙련된 근로자가 필요하지만 인력 풀이 제한적이고 숙련에 최소 4년 이상이 걸려 당장 대체인력을 수급하기 힘들다”며 “지금과 같은 방식의 근로시간 단축을 일괄 적용하기가 불가능한 만큼, 특례업종으로 지정돼야 한다”고 토로했다.

건설업계의 어려움도 비슷했다. 당장 진행 중인 공사를 제때 끝마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조준형 대한건설협회 정책본부장은 “법 시행 전 발주된 공사는 근로시간 단축 이전 기준으로 계약했는데, 공공사업에서조차 주 52시간 근로제만 적용하고 공사 기간 연장은 안 해주고 있다”며 “초과 공사비는 건설사가 떠안을 수밖에 없어 정부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방송·IT 등 제조업과 근무 방식이 크게 다른 업계 역시 개선이 필요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박상주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사무국장은 “한류 콘텐트를 만들어낸다는 자부심을 갖고 어려움을 견뎌냈던 제작사들이 주 52시간 근무제로 완전히 무너지게 생겼다”고 밝혔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제작 기간과 제작비가 배로 늘어나게 되고, 제작사 입장에선 수익을 맞추기 위해 제작 편수를 줄이거나 비용을 줄여 콘텐트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사드 보복이 있었던 지난해에 수익을 낸 제작사를 거의 본 적이 없었다”며 “여기에 근로시간 단축까지 더해져 올해 112편이던 드라마 제작 편수가 절반으로 줄고, 더는 한류 콘텐트도 생겨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채효근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전무는 “IT 업계엔 사무실이나 출퇴근 시간 구분 없이 일하는 직무가 많다”며 “아이디어란 것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나오는 게 아니고, 그냥 놀다가 산뜻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도 하는데 다른 제조업에 맞춰 똑같은 제도를 적용하는 건 부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필요할 때 집중적으로 일하고, 또 긴 시간 쉴 수도 있도록 선택적 근로 시간제의 정산 기간을 크게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심포지엄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유연근무제 확대 등 향후 입법 보완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본은 규제 강화와 동시에 다양성과 유연성을 추구하며 균형을 꾀했다”고 말했다. 근로시간을 제한하더라도, 업무 특징에 따라 여러 선택지를 둬 부작용을 최소화했다는 지적이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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