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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학생들 연신 "괜찮다"···NG 없는 연극된 교육부 학원 점검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20/06/02 21:10



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A학원 입구에서 교육부 관계자와 취재진들이 문진표를 작성하고 있다. 남궁민 기자





"높은 사람 나왔나 보네" 행인이 웅성거리며 지나갔다. 지난 2일 오후 5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A학원 앞에 교육부 공무원과 학원 관계자가 도열했다. 학원을 배경으로 카메라 앞에선 박백범 교육부 차관은 점검 이유를 설명했다. 행인도 알아차릴 만큼 시끌벅적한 '현장 점검'의 시작이었다.

이날 아침 교육부는 박 차관이 학원 점검을 나간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방문할 학원은 두 곳이 '섭외'됐다. 한 곳은 학원업계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다. 다른 곳은 빌딩 전체를 강의실로 채운 대형학원이다.

직원 3명의 안내를 따라 발열 점검을 받고 문진표를 작성한 뒤 들어간 학원에는 눈에 보이는 곳마다 방역 수칙이 붙어있었다. '쉬는 시간에 친구와 대화 금지'라는 다소 준수하기 어려워 보이는 문구도 있었지만, 지켜지는지는 볼 수 없었다. 한 층 전체에 학생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2일 박백범 교육부 차관(오른쪽)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A학원 강의실에서 학원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남궁민 기자






적막한 강의실을 떠나 다른 건물로 가서야 수업 현장을 볼 수 있었다. 해당 층에서 가장 넓은 강의실에 20여명의 학생이 수업을 듣고 있었다. 수업 중이었지만, 마스크를 코끝까지 올려 쓴 강사와 학생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려운 점을 묻는 박 차관의 질문에 학생은 연신 '괜찮다'고 대답했다.

서울시교육청 학원민원 서비스에 따르면 A학원 강의 가운데 가장 큰 강의의 정원은 240명에 이른다. 강의가 시작되는 5시를 훌쩍 넘은 시간에도 학생들을 만날 수 없었다. 이유가 궁금해 학원 관계자에게 물었다. "지금 중간고사 기간이라서 강의 거의 다 안 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날 방문한 다른 학원은 입구에 접촉식 출입기록대와 열화상 카메라가 설치돼 있었다. 공항 출입국 심사대가 떠오르는 학원의 모습을 둘러 본 한 교육부 관계자는 "이렇게 완벽하니까 강남에서는 (학원) 확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는 거죠"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1시간여의 점검이 끝난 뒤 박 차관을 수행한 한 교육부 공무원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날 현장 점검은 'NG' 없이 거의 완벽하게 마무리됐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학원에서 구청 및 새마을지도자협의회 관계자들이 방역을 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최근 중요한 감염 경로로 떠오르고 있는 학원의 현실은 어떨까. 지난달 30일 한 학원 조교가 확진되자 마포구청은 학원 두 곳과 스터디카페 한 곳을 방문한 이용자는 신고해달라고 공지했다. 구청 관계자는 "별도의 출입기록이 없어 수강생 명부를 보고 추적했다"고 말했다.

8만여개에 달하는 전국의 학원 가운데 박 차관이 본 것 같이 발열 체크를 전담하는 조교를 두고 출입기록대를 설치할 수 있는 학원이 얼마나 될까. 교육부 차관이 향해야 할 곳은 강남 대형학원이 아닌 경영난에 시달려 소독제 비치도 어렵다고 호소하는 학원이 아니었을까.




4월 20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서울농학교 개학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뉴스1





기자는 두달여 동안 9차례 현장 방문에 동행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부터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 교육계 고위 인사들은 수차례 학교를 찾았다.

기자에게 날마다 메일을 보내며 어려움을 호소하는 지친 교사와 기사 댓글에 줄줄이 달리는 현장의 혼란은 그곳에 없었다. '장학사님 오신다'며 바닥에 왁스를 칠하고 신발장을 정리하던 기자의 학창시절이 떠오르는 현장 점검은 여전했다.

진짜 현장의 목소리는 댓글에나 있는 웃픈 현실이다. '제대로 현장이나 와보고 기사를 쓰라'는 댓글에 따끔함을 느껴야 하는 건 기자만이 아니다. 당국도 이제는 수행원이 수첩을 펴고 따르는 '행차'보다 혼란스러운 현장을 직시하는 '암행'을 해야 할 때가 아닐까.

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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