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Los Angeles

62.0°

2020.10.29(Thu)

[우리들 사는 이야기] 미국 요가 선생의 따뜻한 이야기 - 다섯 번째

  • 글꼴 확대하기
  • 글꼴 축소하기

[시애틀 중앙일보] 기사입력 2020/05/30 21:36

비니요가(Vini Yoga)를 경험하다

가게에서 계속 일을 하면서 아직 뚜렷한 직업 진로를 선뜻 결정 내리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주변을 살펴보면 모두들 자기 일을 열심히 하며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제자리에서 맴도는 풍뎅이 마냥 시간을 보내고 있는 스스로에게 실망이 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생각해보면 중국 속담에 ‘학생이 준비되었을 때 스승이 나타난다’는 말이 있듯이 운명적으로 내 요가 스승을 만나기 위한 준비시간이 필요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오는 길에 그동안 한 번도 눈에 띄지 않았던 요가원이 집 근처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너무 신기하였다.
1년 동안 같은 길을 운전하며 다녔는데 이제야 눈에 띄다니 말이다.
요가원을 발견했을 때는 떠도는 방랑자가 드디어 정착지를 찾은 기쁨, 메마르고 갈라진 삭막한 마음에 물 한 바가지 들이붓는 듯한 편안함과 신선함이 느껴졌다.

미국생활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슬르고 스스로 위로할 수 있는 도피처가 필요했던 것이다.
요가원에 가면 영어로 기죽을 이유가 없을 것 같았고, 미국에서는 요가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여 문을 두드렸다.
일단 월, 수, 금 새벽 6시 30분에 하는 몰입 요가 클래스(Immersion Class)에 등록하여 요가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첫 수업에 들어가서 나는 깜짝 놀랐다. 선생님이 흰머리 성성한 뚱뚱한 할머니가 아닌가?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군살 없는 몸매에 예쁜 요가복을 입은 젊은 선생들만 보다가 이 할머니 선생님을 보니 도대체 요가 수업이 상상되지 않았다.
그러나 할머니 선생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름다운 미소로 나를 반겼다.

선생님은 자신이 동작을 보여주기보다는 동작 하나하나를 자세하게 설명했고, 나처럼 이 수업에 완전 새내기인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동작을 하고 있으면 가까이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자세를 교정하여 주었다.
나는 뚱뚱한 할머니 선생님이 너무나 편안한 모습으로 어려운 동작들을 자세하게 설명하며 자신의 일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미국 오기 전 요가 수련회 때 나도 모르게 입으로 뱉었던 “미국 요가 강사가 되겠다”는 말이 떠올랐다.

저렇게 나이 많은 할머니께서 요가 티칭을 즐기는 걸 보니 나도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가슴을 뛰게 했다.
요가를 하면서 가끔은 ‘내가 저 자리에 있다면 어떨까?’ 상상하며 할머니 선생님과 눈이 마주칠 때면 살짝살짝 미소를 지어 보기도 했다.

요가 수업은 한국에서 했던 것과는 달리 반복(Repetition)과 정지(Hold)의 동작들로 구성되어 일정한 시퀀스(Sequence)를 가지고 진행되었는데, 언제나 호흡을 강조하고 개개인에 맞는 동작을 미리 제시했다.
참여한 학생들 어느 누구도 몸과 싸우는 힘든 표정이 아니었다.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동작들의 자연스런 플로(Flow)가 지루하지 않고, 하고 나면 몸이 가볍고 개운해서 하루 종일 에너지가 생겨나는 느낌이었다.
1시간 15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 수업이 끝났다. 이 요가를 비니요가(Viniyoga)라 하였다.

비니요가는 한국에서 경험했던 요가와 많이 달랐다. 요가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비니요가는 상당히 다른 경험이었다.
동작의 움직임이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천천히 움직였고, 호흡의 사용은 지금까지의 어떤 요가 수련보다 훨씬 더 내면에 집중하게 했다.
내가 나를 돌보는 느낌, 전혀 경쟁적이지 않은 분위기, 각 포즈에 대한 강사의 사려 깊은 지도 등에서 마침내 나는 요가 매트에서 충분히 이완할 수 있었다.

다른 스타일의 요가에 어떤 불만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비니요가의 경험이 나에게는 “바로 이거야!!” 하는 느낌을 주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몇 달이 지나자 태평양을 건너 미국까지 따라와 괴롭힌, 오래 전 한국에서 무리하게 요가를 하다 다친 왼쪽 골반의 뻐근함과 찌르는 듯한 고통이 사라졌고, 오른쪽 뒷목의 무겁고 당기는 듯한 고질적인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점점 이 요가에 중독되어 갔다.
새벽 수업에 오는 학생들은 주로 얼리버드(Early Bird), 즉 직장에 가기 전에 요가를 하고 출근하는 직장인, 혹은 은퇴한 부지런한 노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는 이 요가에 흠뻑 빠져 결코 빠지는 법이 없었는데, 일주일에 세 번씩 요가를 같이 하다 보니 학생들끼리 친해져서 끝나고 20분 정도씩 수다를 떨다 헤어지곤 했었다.
특히 퇴직한 노인 분들이 이런저런 질문도 해주시고 인내심을 가지고 내 얘기를 들어주어서 나는 긴장감 없는 이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내가 이 요가에 깊은 관심을 보이자 어느 날 요가가 끝난 후 차를 마시며 학생들이 요가원 원장에 대해 말해주었다.
이 요가원 원장의 이름은 트레이시(Tracy)이고, 전에 마이크로소프트사에 다녔는데 허리를 다쳐 미국 비니요가 창시자이자 제1대 선생인 게리 크래프트소우(Gary Kraftsow)로부터 요가를 배우게 되었단다.
이 요가를 하면서 고질적 질병이었던 허리가 낫게 되자 이 요가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때 마침 게리 크래프트소우가 하와이에서 요가 강사자격증 반을 개설한다는 소식을 듣고 하와이와 시애틀을 오가며 강사자격증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제2대 비니요가(Viniyoga) 선생이 되었고, 이 요가의 비전과 철학에 심취하여 회사를 과감히 그만두었단다.
그 후 시애틀에 비니 요가원을 열어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올해 열 번째 요가 강사 과정(Teacher’s Training)을 위한 학생을 모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수업은 매우 유명하여 학생들이 매번 꽉 차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미리 등록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다고 했다.
나는 트레이시 수업에 꼭 참여하고 싶었지만 트레이시는 토요일에 한 번만 수업을 했는데, 나는 토요일에 일을 하는 관계로 아쉽게도 참여할 수가 없었다.

올해 열 번째 강사과정을 오픈 한다는 소식을 듣고 온 날 나는 헤매고 헤맸던 행복의 파랑새를 찾은 양 없던 희망이 생겨났다.
매주 세 번씩 만나는 할머니 요가 선생님을 보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고, 그 분이 새벽에 전해주는 따뜻함과 긍정적 에너지는 학생들의 하루를 생명력 있고 활력 있게 만들어 주었다.

아하! 깨달음이 왔다. 이제 뭘 하고 싶은지,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드디어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지금 이 현실에서 어떤 방법을 취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고, 나에게 그 과정을 이겨낼 수 있는 힘, 끈기, 인내심이 있는지, 그리고 실망하고 어려움이 닥쳐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지,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들려준 ”힘들어도 나는 나를 믿었다”, “꾸준히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내일 어떤 변화를 기대한다면 오늘 그 변화를 시작하는 일을 해야 한다”처럼 어떤 순간에도 끝까지 가겠다는 나를 믿어야 했다.


오늘의 핫이슈

PlusNews

포토 뉴스

전문가 칼럼전문가 전체보기

HelloKT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