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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새로운 양희은 “노래는 추억팔이가 아니다”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9/12 08:05

후배들과 작업 ‘뜻밖의 만남’ 5년째
음악인생 48년 “나는 항상 배운다”
성시경과 함께한 ‘늘 그대’ 내놓아
윤종신부터 악동뮤지션까지 협업

“가수는 사람들 속얘기 풀어내야”
다음달 10일부터 전국 투어 나서


양희은은 ’여섯 살 때 육촌언니 국민학교로 도시락 배달 갔다가 처음 집 바깥에서 노래한 이후 여태까지 왔다“며 ’다들 진짜로 좋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양희은(66)이란 이름 석 자를 들으면 어떤 노래가 떠오르는가. ‘아침이슬’(1971)이 가장 먼저 튀어나온다면 당신은 필경 1980년대 대학가 시위 현장에서 분연히 이 노래를 부른 경험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누군가는 난소암으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그의 자전적 노랫말이 담긴 ‘하얀 목련’(1983)을 들으며 함께 눈물을 훔쳤을 것이고, 어떤 이는 ‘내 나이 마흔 살에는’(1995)을 읊조리며 지난 시간을 추억할 것이다. ‘상록수’(1997)를 들으면서 2016년 겨울 촛불집회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터.

하여 그의 노래는 특별하다. 한 사람의 개인사와 한 나라의 역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48년간 400여곡을 불러온 이력은 독보적이다. 지난달 JTBC‘히든싱어 5’에 출연한 그를 두고 “음악의 나이테를 넓혀온 대중가요계의 거목”이라고 표현한 것 역시 이러한 연유일 테다. 1라운드에서 부른 ‘아침이슬’로 이 프로 전 시즌 통틀어 최초로 0표(가장 원조가수 같지 않은 출연자)를 받은 그는 4라운드 ‘슬픔 이젠 안녕’(2015)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맛을 내는 장처럼 함께 익어온 소리를 선보였다.

12일 서울 연남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그에게 선곡 기준을 묻자 “추억팔이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란 답이 돌아왔다. “가수는 자기 또래 집단의 응원을 입고 자라잖아요. ‘아침이슬’을 처음 불렀던 열아홉 살 소녀와 예순여섯 살의 장년이 부르는 노래가 어떻게 같겠어요. 세상을 보는 게 달라졌는데 살면서 겪은 이야기를 담아내야 그들이 공감할 수 있죠. 같은 곡이라도 다를 수밖에 없죠.”

2014년 10월 ‘뜻밖의 만남’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다들 디지털 싱글을 발표하고 새로운 플랫폼이 생겨나는 상황에서 정규 음반을 고집하다 보면 오프-오프사이드로 밀려날 것 같다는 얘길 들었어요. 젊은이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라도 후배들과 함께 작업해 보면 어떨까 해서 시작하게 됐죠. 제가 이래 봬도 극소심 A형이라 은근 남의 충고를 잘 듣거든요.”

기왕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그는 한 번도 같이 작업해 보지 않은 뮤지션들을 직접 찾아 나섰다. 윤종신 작곡의 ‘배낭여행’부터 지난달 발표한 성시경 작곡의 ‘늘 그대’까지 5년간 9곡이 그렇게 탄생했다. “제가 유심히 지켜봤던 사람 중 ‘왠지’ 끌리는 사람들에게 먼저 연락을 했어요. 이적이나 이상순도 그렇고. 누가 제 노래를 써 놓고 기다리겠어요. 그런데 다행히 곡이 금방금방 오더라고요. 그래서 멜로디에 맞춰 제가 가사를 쓰기도 하고, 정 안 떠오르면 부탁하기도 했죠. 아무래도 곡의 감성이 다르니까.”


성시경이 만들고 양희은이 부른 ‘늘 그대’. [사진 옹달샘]

그중에는 김창기의 ‘엄마가 딸에게’(타이미, 김규리)나 악동뮤지션의 ‘나무’처럼 후배들과 함께 부른 노래도 있다. “제 노래에 랩이 들어가고, 아이들과 함께 화음을 맞추고.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모든 게 다 빠져나간 것 같은 할아버지의 손을 나뭇가지에 비유하다니 그 관찰력이 놀랍더라고요.” 후배지만 호랑이 프로듀서는 없었을까. “성시경이 처음엔 멋쩍어서 어려워하더니 한 소절을 가지고 50분을 시키더라고. 리듬 앤 블루스를 해봤어야지. 음을 쪼개는 게 포크랑은 전혀 다르니까 겨우 오케이 받았어요. 많이 배웠죠.”

양희은은 ‘배움’이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했다. 1999년부터 20년째 진행을 맡고 있는 MBC 표준FM ‘여성시대 양희은, 서경석입니다’을 두고 그는 “여성시대는 내게 평생교육 대학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처음엔 힘든 이야기 듣는 것도 힘들고, 사연을 보낸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나 싶었는데 달라지더라고요. 저마다 아픔을 가진 청취자들이 사연 속 아픔을 들으면서 자기객관화가 이뤄지고, 그게 등식이 돼서 제 아픔을 지워나가는 거예요. 상쇄되고. 거대한 하나의 원이 만들어진다고 할까.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버팀목이 돼 주는 거죠.”

실제 그의 삶이 흘러온 궤적 역시 라디오와 비슷하다. 유방암 말기인 추희숙 환자의 사연이 2001년 30주년 기념 앨범 타이틀곡 ‘희제 생일축하 편지’로 탄생하는 식이다. “그분이 소녀 가장인데 암에 걸린 사연이 남 얘기 같지 않더라고요. 나도 돈 벌려고 알바로 노래를 시작했잖아요. 소녀 가장이고. 70년대 초에 남동생 공부 시키려면 누나들은 공단 아니면 일할 곳이 없었는데 그 양반도 그렇더라고. 앨범은 잘 안됐죠. 너무 무겁고 청승맞으니까. 그래도 난 꼭 하고 싶더라고. ‘여성시대’라는 말이 아직도 각별한 의미를 갖는 건 우리가 아직 차별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잖아요. 그러니까 나라도 해야지.”

다음달 1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을 시작으로 대구·광주·부산·인천·대전·성남 등으로 이어지는 전국 투어 ‘뜻밖의 선물’은 이처럼 선물 같은 노래를 그러 모으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노래는 참 좋은데 이런저런 이유로 묻힌 알토란 같은 노래들을 아낌없이 캐보려고요.”

그렇다면 다음 ‘뜻밖의 만남’은 누가 될까. “포크라는 게 결국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고이는 이야기를 풀어주는 거잖아요. 요즘은 그 시절 포크가 했던 걸 힙합이나 인디에서 하는 것 같아서 가리지 않고 많이 들어요. 지코·아이콘·볼빨간사춘기... 다 자기 얘기잖아요. 다음 타자가 누가 될진 모르겠지만, 열심히 준비해 보겠습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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