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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적 호텔' 들어보셨나요···숙박업계 넷플릭스의 시도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12/14 16:16

서울 라이프스타일 기획자들⑥ 지랩(Z-lab) 이상묵 대표

스테이폴리오는 ‘머무는 것 자체가 여행이 된다’는 가치관으로 건축사 사무소 ‘지랩’이 2015년 설립한 숙박 중계 사이트다. 지랩이 추구하는 가치에 맞는 스테이(stay), 즉 머무는 곳을 포트폴리오(portfolio?자료수집 철)처럼 보여준다는 의미다.




스테이폴리오를 대중에게 알린 서촌의 한옥 스테이 '누와'. 내년 4월까지 예약이 완료됐을 만큼 인기가 높다. [사진 스테이폴리오]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엄선된 소수의 숙소를 모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에어비앤비의 고급 버전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에 가깝다. 넷플릭스는 다른 동영상 플랫폼과 다르게 자체 제작 콘텐트의 힘이 강력하다. 오리지널 콘텐트의 힘으로 사용자들을 모은다. 스테이폴리오 역시 큐레이션도 훌륭하지만, 다른 숙박 중계 플랫폼에서는 접근할 수 없는 '자체 제작' 숙소의 경쟁력이 압도적이다.




스테이폴리오는 자신들의 관점에서 선택된 소수의 숙소(stay)만 소개한다. [사진 스테이폴리오 홈페이지]






스테이폴리오의 자체 제작 숙소를 만드는 곳이 바로 건축사 사무소 지랩이다. 제주 독채 펜션 ‘눈먼고래’, 요가를 경험할 수 있는 숙소 ‘브리드인제주’, 서촌에서 색다른 고립을 누릴 수 있는 한옥 공간 ‘누와’ 등 누구나 한 번쯤 머물고 싶어지는 공간들은 모두 지랩에서 만들었다.

지랩은 성균관대 건축학과 출신 이상묵?노경록?박중현 세 명의 공동 대표가 운영한다. 보통 건축 사무소는 건축주의 의뢰를 받아 멋진 공간을 만드는 일을 한다. 하지만 지랩은 이런 수동적인 방식을 벗어나 직접 공간을 기획하고 운영하며, 서비스하고 브랜딩까지 한다. 숙소 큐레이션 플랫폼 스테이폴리오의 운영은 물론, 마을 곳곳에 객실이 흩뿌려진 형태의 '수평적 호텔'을 짓고, 나아가 휴대폰처럼 개통하는 미래의 주거 상상도까지 제시한다. ‘에어비앤비’처럼, ‘넷플릭스’처럼, 혹은 ‘타다’처럼, 공간 기획과 브랜딩 분야에서 혁신을 보여주고 있는 지랩의 이상묵 대표(38)를 지난 13일 만나 인터뷰했다.




지랩이 만들고 스테이폴리오가 소개하는 제주 프라이빗 렌탈 하우스 '눈먼고래.' 100년된 제주 옛가옥을 재생했다. [사진 스테이폴리오]






격렬하게 쉬고 싶다, 지랩이 만든 공간
“펜션이나 민박이 아니라, 스테이(stay)죠. 머무는 것만으로 여행이 되는 곳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상묵 대표는 대학원 시절 건축가 민규암씨가 만든 양평 펜션 ‘생각속의 집’을 보고 펜션도 건축가의 혼을 담으면 오라(aura)를 뿜는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후 부모님이 거주하던 공간을 펜션 ‘수화림(2008)’으로 바꾸고, 지금의 지랩 멤버가 모여 ‘제로 플레이스(2011)’를 만들면서 이런 생각을 굳혔다고 했다.

서산에 위치한 제로 플레이스는 지랩과 스테이폴리오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숙소의 형태를 처음으로 제시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다. 제로 플레이스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0으로 돌아가는 공간을 의미한다. 오롯하게 놓인 침대, 편안한 욕조 이외에는 모든 실내 디자인을 단순화시켰다. 25년 된 옛 식당을 개조해 옛것의 느낌을 살린 공간으로 당시만 해도 흔치 않았던 오픈 라이브러리와 카페 등 투숙객에게 영감을 주는 콘텐트를 곳곳에 배치했다. 이후 여러 분야의 창작자들이 주로 찾으면서 입소문이 났다.




서산의 '제로플레이스'는 지랩의 멤버들이 모여 처음 작업한 프로젝트이자, 지랩이 추구하는 공간의 방향성을 모두 담은 작품이다. [사진 스테이폴리오]






이후 지랩이 만들고 스테이폴리오가 소개하는 공간의 방향성은 확고했다. 특히 휴식에 대한 남다른 갈망이 느껴지는 공간을 추구한다. 최근작 ‘와온’은 이상묵 대표의 표현을 빌리면 “격렬하게 쉬고 싶다”는 현대인의 욕구가 반영된 공간이다. ‘따뜻한 집’이라는 의미로 제주의 옛 돌집에 나무 소재와 따뜻한 물?바람?향기 등 여러 요소로 온기를 불어넣었다. 서촌의 ‘일독일박’은 한 권의 책을 읽으며 쉴 수 있는 ‘북 테라피 하우스’를 지향한다. 지역과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도 특징이다. 100년 된 돌집의 원형을 살려 제주의 지역성을 반영한 디자인을 선보인 ‘눈먼고래’가 대표적이다. 요가 스테이 ‘브리드인제주’처럼 머물면서 경험할 수 있는 남다른 콘텐트를 제안하기도 한다.




지랩의 최근작 '와온.' 온전한 쉼과 휴식을 위해 따뜻한 집을 만들었다. 첨단 IOT 기술을 도입, 조명과 온도 등을 외부에서 제어할 수 있어 호스트가 쉽게 섬세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사진 스테이폴리오]






마을이 호텔이 될 수 있다면
보통 호텔은 도심의 높고 큰 건물 한 채로 구성된 숙박 시설을 말한다. 그런데 만약 호텔이 수직적 건물이 아닌, 수평적 마을에 퍼져있는 형태라면 어떨까. 지랩이 최근 서울 종로구 서촌에서 진행하고 있는 스테이 실험이 바로 이 '수평적 호텔'이다. 다른 말로는 '마을 호텔'이라 부르기도 한다. 객실이 마을 전체에 하나씩 흩어져 있고 컨시어지와 식당, 카페와 상점 등도 마을 곳곳에 있다. 말하자면 마을 전체가 하나의 호텔이 되는 셈이다. 지랩과 스테이폴리오는 최근 이런 수평적 호텔의 개념을 담은 ‘서촌 유희’라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서촌유희 프로젝트 중 하나인 '아담한옥.' 서울 도심에서 고즈넉한 나만의 동굴을 찾아 들어가고 싶을 때 찾는 공간으로 설계됐다. [사진 스테이폴리오]






일단 객실은 서촌의 한옥 다섯 곳을 재생해 꾸몄다. ‘누와’‘일독일박’‘아담한옥’‘서촌영락재’‘썸웨어’가 그것이다. 비슷한 수준과 감도로 만들어진 한옥 스테이들은 만약 한 군데에 문제가 생기면 투숙객을 다른 객실로 안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서촌유희 프로젝트 중 하나인 '일독일박,' 정해진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휴식할 수 있는 숙소다. [사진 스테이폴리오]






다양한 서비스 공간도 마을 곳곳에 마련돼 있다. 오랫동안 비어있던 점포를 개조해 만든 ‘한권서점’은 겉으로는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소개하는 서점이지만, 뒤에서는 이 수평적 호텔의 운영과 서비스를 담당하는 컨시어지 역할을 한다. 지속가능한 라이프스타일 제품을 소개하는 ‘서촌도감’은 상점, ‘PH서촌’은 라운지 역할을 한다. 스테이폴리오 사무실이 위치한 ‘서촌창작소’에서는 다양한 클래스도 열린다.




서촌유희의 컨시어지 공간이자, 매달 한 권의 책만을 판매하는 '한권 서점' 전경. [사진 스테이폴리오]






무엇보다 서촌에 본래 존재했던 다양한 공간들을 엮어 지역 활성화를 지원한다는 점에서 새롭다. 서촌의 한옥 스테이에 머물면서 식사는 어디에서 하는 게 좋은지, 갈만한 카페와 상점은 어디에 있을지 안내하는 지도도 만들었다. 한옥 스테이에서 나와 이런 상점들까지 걸어가는 길이 엘리베이터가 되는 셈이다. 이상묵 대표는 “서촌의 여러 공간이 시너지를 내는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사람과 이야기, 지역 고유의 색을 발산하는 동네 이야기가 머무름의 경험을 보다 다채롭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촌유희의 체험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K-라이프스타일.' 가장 한국적인 삶을 살아보는 하루를 체험할 수 있다. [사진 스테이폴리오]






개통하는 집, 미래 세대를 위한 주거
핸드폰처럼 개통하는 집을 만들면 어떨까. 핸드폰 사업을 하는 통신사처럼 자본이 있는 회사가 서울 곳곳의 자투리땅을 모두 매입하고 지랩 같은 회사에 의뢰해 매력적인 집을 짓는다. 이 집은 밀레니얼들의 취향과 감성을 반영한 특별한 디자인을 입고 있으며, 각종 IOT 기술로 꽉 차 있는 집이다. 일정 시기가 지나면 운영체제도 업그레이드도 된다. 핸드폰을 2년 약정해 달마다 얼마간의 돈을 내고 사용한 뒤 기기가 내 것이 되는 것처럼, 집도 35년간 월 얼마씩을 낸다는 약정을 하면 종국에는 내 것이 된다.




소유가 아닌 점유 형태로, 휴대폰처럼 개통하는 나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을까. 사진은 서촌 한옥 스테이 '누와'의 실내 모습. [사진 스테이폴리오]






하루 비용을 지불하는 것처럼 자신이 원하는 집을 선택해 일정 주기 간격으로 돌아다니면서 사는 것은 어떨까. 한 곳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매번 한 달 살기를 하고, 서로의 집을 바꾸기도 하고, 집이 지겨워지면 다른 집을 개통해 나갈 수도 있다. 물론 사용자간의 단단한 커뮤니티가 형성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상묵 대표는 “‘개통하는 집’이 미래의 주거에 대한 작은 단서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처럼 공급자 위주의 취향 없는 집을 대량생산해 공급하는 게 아니라 사용자 관점에서 집은 제공돼야 한다”고 했다. 밀레니얼 세대에게 집은 단순히 머무르는 장소가 아니라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또한 밀레니얼 세대는 소유보다는 공유에 익숙한 세대다.




1950년대 지어진 집을 재생해 만든 서촌 '썸웨어.' [사진 스테이폴리오]






혁신의 대명사인 아이폰을 만든 ‘스티브 잡스’, 지역 문화를 디자인 관점에서 조명한 ‘나가오카 겐메이’, 공간을 제품처럼 사용자 관점으로 만들어온 ‘조수용’ 전 JOH 대표. 모두 이상묵 대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멘토들이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서 “이들처럼 사회의 가치를 한 단계 높이고, 미래 세대에 기여할 수 있는 혁신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지랩이 할 앞으로의 공간 실험이 기대되는 이유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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