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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화랑으로 들어 온 귀뚜라미

[중앙포토]

[중앙포토]

귀뚤~귀뚤~ 귀뚜루루루~~ 어디에선가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온다. 잘못 들었나? 고개를 갸우뚱하고 귀 기울여본다. 그때 확인이라도 하라는 듯 또다시 더 크게 귀뚜루루루~~ 하고 운다. 순간 나도 모르게 콧날이 시큰해왔다. 이방인은 어쩔 수 없이 조그만 풀벌레 울음소리에도 가슴을 저미는 비애에 젖어드는가 싶다.

분명 귀뚜라미 소리란 것을 확인한 난 그때부터 ‘저것이 어디서 살다가 어떻게, 참 이상도 하네’하고 궁금해졌다. 대도시 중심가 콘크리트 빌딩만이 즐비한 갤러리에서 뭐 찾아 먹을 것이 있다고 잠입했담.

어쩌면 우리 갤러리에 전시된 풀잎에 올라앉은 귀뚜라미 그림을 보았나? 그림 속 귀뚜라미를 보고 제 동무로 착각하고 들어온 건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머리 속을 휘젓고 지나간다.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짝 찾는 소리라 한다. 모든 벌레가 그렇듯 귀뚜라미도 수컷이 운다. 주로 밤에 활동하며 잡식성으로 귀뚜라밋과의 갈색 곤충이다.



또한 귀뚜라미는 수컷끼리 만나면 요란한 울음소리를 내며 상대를 밀어 낸다니, 엄지 손톱만한 미물인 곤충도 생존에 있어선 한 치의 양보도 없단 말인가 싶다.

반갑고 애틋한 마음은 순간 지나가고 뜻밖에 귀뚜라미와 원치 않는 동거를 시작하게 되고 말았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도 들릴 만큼 조용한 갤러리에서 책을 벗삼는 나의 사유의 세계를 허락도 없이 무시로 뒤흔드는 얄미운 것. 때론 그것도 노곤한지 잠잠한 순간도 있다. 그러다가도 영락없이 손님이 들어오면 아는 척 기운찬 소리로 ‘나 여기 있소’하고 울어댄다. 감수성이 풍부한 손님들은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하며 “어~어, 귀뚜라미가 다 있네”하고 웃는다. 손님들은 때 아닌 장소에서 들려오는 느닷없는 소리에 예민한 내면의 놀라움과 반가움을 동시에 표현하는 것이리라.

그것도 내가 심적으로 편할 때라면 아마 그냥 들어줬지 싶다. 그런데 미국에 온 후 편안히 잘 지내다가 그즈음 가장 고약한 일을 당해 엄청난 재산 손실을 보고 내 마음이 마음이 아닌 상태였다.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서 바스락 소리에도 날카롭게 날이 곤두서는 판인데 이놈이 어쩌자고 이런 때에 눈치없이 찾아 들어 나를 괴롭히는지 모르겠다.

가을의 전령사라는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어떤 이들은 사랑의 노래라 찬양한다. 나 역시 때론 그리워하던 소리가 아니었던가. 하나 간사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인지 그때 내 심정은 그렇게 낭만적으로 받아들일 만큼 여유롭지가 못했다.

풀벌레소리가 너무 요란하다. ‘에이, 저 놈을 그냥 동물병원에 데려가 성대제거수술을 할까 보다’ ‘내, 저까짓 손톱만한 놈에게 이렇게 휘둘리다니, 머리는 뒀다 뭣에 써?’하고는 슬슬 소리를 따라 뒤로 갔다. 그때 제 노래 소리에 도취한 귀뚜라미는 돌확 위에 보란 듯이 올라 서있다. 마치 수많은 관객 앞에서 연미복을 입고 열창하는 성악가처럼 한창 목청을 돋워 힘껏 노래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그 순간 돌확 위에 놓인 대나무 물받이를 들어 무심히 한번 가볍게 휘둘렀다. 그런데 귀뚜라미는 그 자리에서 그만 즉사하고 말았다.

사실은 꼭 그러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일이 그렇게 되고 말았다. 귀뚜라미 ‘사체’를 치우며 나는 속말로 “톡 튀어 달아나지, 너도 참, 왜 그리 멍청하게 죽었니”하고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개미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해 망설이는 소심한 내가 어쩌다 그렇게 모진 일을 저질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마 내 평생 처음 저지른 미필적 고의에 의한 과실치사가 아닐까 싶다.

만약에 귀뚜라미가 나를 법정에 세워 “네가 뭔데 남의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마음대로 앗아갔느냐?”고 항변한다면 그저 유구무언일 수밖에. 묵비권을 쓰면 죄가 가벼워질까? 때로 즐기던 너의 소리가 그날은 변덕스러운 나의 마음에 있을 수 없는 살상을 저지르는 빌미가 된 것이라고 속으로 뇌고 있을 뿐이다.

막막하다. 결국엔 그 모두가 나의 옹졸한 이기심의 발로였음을 고백한다. 죽은 너를 도로 살릴 재간은 없으나, 이제라도 네 앞에 고개를 숙인다.

고백하건대 내가 싫어한 건 네가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울음소리를 노래랍시고 쏟아내 신경을 갉아대는 너의 ‘귀뚤~ 귀뚤~ 귀뚜루루루~~’하는 소리였단다. 일단 고의든 과실이든 소리가 사라졌다. 그로써 모든 불안 요소마저 사라지리라 믿었던 것이 오산이었다.

이민이라는 살얼음판 위에서 학 다리 구멍 들여다보듯 조심조심 살았건만 내 속 짚어 남의 속이라고 사람 너무 잘 믿은 대가로 평생에 만나고 싶지 않은 뼈저린 고난을 겪었다. 어찌 되었든지 그 순간만큼은 견딜 수 없었을지라도 어찌어찌 그때를 지나 세월이 흐르면, 그 혹독했던 일도 별 것 아닌 듯 잊고 사는 것이 사람인데.

왜, 그땐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생각하는 지혜마저도 없었을까. 안 되면 조상 탓이라고, 남의 탓으로 돌리기 좋아하는 못난 내 의지박약 탓에 애꿎은 귀뚜라미만 죽음으로 내몰은 결과가 되었다.

때늦은 후회가 가슴에 차오른다. 세상만사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깨달으며 혼자 고소를 금치 못한다.

이 가을에 내 실수로 생명을 앗아버린 귀뚜라미님에게 조시를 바쳐 사죄를 고해야 할까 보다.


박유선 / 수필가 ‘수필문학’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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