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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 모습 간직한 절벽 위 도시

스페인 쿠엥카(Cuenca)

쿠엥카의 명물로 500여년 전 만들어진 목조 발코니가 절벽 밖으로 나와 있는 일명 매달린 집(CasasColgadas). 현재는 3채만 남아있다. [곽노은 제공]

쿠엥카의 명물로 500여년 전 만들어진 목조 발코니가 절벽 밖으로 나와 있는 일명 매달린 집(CasasColgadas). 현재는 3채만 남아있다. [곽노은 제공]

16세기 수녀원과 구시가를 연결하기 위해 협곡 사이에 만들어진 세인트 파블로 다리. [토마스 파노 제공]

16세기 수녀원과 구시가를 연결하기 위해 협곡 사이에 만들어진 세인트 파블로 다리. [토마스 파노 제공]

쿠엥카의 중심지인 마요르 광장. 시청사, 대성당, 예쁜 노천카페들이자리 잡고 있다. [존 더 페즈 제공]

쿠엥카의 중심지인 마요르 광장. 시청사, 대성당, 예쁜 노천카페들이자리 잡고 있다. [존 더 페즈 제공]

16-18세기에 건축된 수녀원을 개조해 만든 숙박시설 파라도르 전경. [트립 어드바이저 캡처]

16-18세기에 건축된 수녀원을 개조해 만든 숙박시설 파라도르 전경. [트립 어드바이저 캡처]

코로나 사태로 재택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여행에 대한 갈망이 커지고 있다. 직접 현지를 돌아보며 풍물과 음식 등을 체험해 볼 수는 없지만, 여행가들의 생생한 사진과 여행기를 통해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워싱턴 중앙일보에 유럽 여행기를 기고하고 있는 여행가 곽노은 씨가 남가주 한인들과 나누고 싶다며 스페인 여행기를 보내와 지면을 통해 사진과 함께 소개한다.

매달린 집 목조 발코니부터
흔들 다리까지 볼거리 풍성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거리에 위치한 쿠엥카는 해발 946m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는 도시다. 총인구는 5만5000명으로 로마 시대 때 이곳에는 사람들이 살지 않았다. 714년 아랍인들이 이 지역을 점령하자 전략적으로 매우 좋은 위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랍인들은 후카르강과우에카르강 협곡 사이에 1km 길이의 성벽을 쌓고 독수리 둥지를 만들었다. 바로 쿵카(Conca)라 불리는 쿠엥카의 어원이 된 요새를 말한다. 사람들은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섬유까지 제조했다. 이때부터 도시는 번영을 누리게 된다. 당시의 번영을 상징하는 유물이 현재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1050년경 쿠엥카 공방에서 상아를 깎아 만든 보석 상자다. 기독교 군대가 아랍인들을 몰아낸 것은 1177년9월21일로 이후 도시는 탑과 대성당을 짓고, 절벽 밖으로 돌출된 집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목조 발코니가 절벽 밖으로 나와 있는 일명 매달린 집(CasasColgadas)이다. 현재는 3채만 남았다. 하지만 1920년대 까지만 해도 8채가 있었고 15-16세기 사이에는 수 십채가 줄지어 있었다. 500년 전에 절벽 밖으로 발코니를 만들었다는 것이 상상만 해도 신기하다. 사람들은 발코니에서 협곡 풍경을 즐기며 서로 인사도 했을 것이다. “올라, 꼬메스타!” 현재 한 집은 레스토랑, 다른 한 집은 추상 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스페인에는 파라도르(Parador)라는 고급 호텔 체인이 있다. 중세 시대의 고성, 요새, 수도원 등을 개조해 숙박시설로 사용하는 곳이다. 그래서 자연환경이뛰어나고 조용하고 고풍스러운 곳이 많다. 스페인에만 97개의 파라도르가 있다. 관리는 1928년 창업한 파라도레스 데 투리스모라는 회사가 운영한다. 쿠엥카에도 수녀원을 개조한 파라도르가 있다. 매달린 집을 바라보는 협곡 건너편에 자리 잡고 있다. 16세기에서 18세기 사이에 지은 수녀원은 드라마틱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모든 객실은 고급스럽게 꾸몄으며 수녀들이 사용하던 식당은 멋진 레스토랑으로 변모했다. 고딕 양식의 수녀원은 유리로 둘러싸인 우아한 회랑도 있다. 가격이 좀 높긴 하지만 멋진 추억을 만들 수 있어 많은 사람이 찾는다. 우리도 처음에는 파라도르에 숙박하려 했다. 하지만 방 3개를 예약하려니 아파트먼트와는 많은 가격 차이가 있었다. 같은 사이즈의 아파트먼트는 120유로면 충분했지만 파라도르는 700유로가 필요했다. 세 집이 상의한 끝에 아파트먼트를 예약했다. 파라도르는 후에 방문하여 사진만 몇장 찍었다.

협곡 사이를 이어주는 세인트 파블로 다리는 16세기에 수녀원과 구시가를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나무와 밧줄로 만든 흔들 다리였다고 한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다리는 철과 목재를 사용해 1902년 만들었다. 118년 된 다리여서 강풍이 불면 지금도 흔들린다. 다리를 건너며 바라보는 경치는 시원하고 아름답다.

쿠엥카는 골목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중세 건축물, 빈티지한 색상의 건물들, 작은 스쿠터 등이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한다. 멀리 16세기에 건축된 망가나탑이 보인다. 탑 중앙에 큰 시계가 있어 ‘시간의 탑’으로 불리는 건축물이다. 도시의 상징이라고 하는데 이곳에는 볼만한 것이 너무 많다. 여기서 조금만 내려가면쿠엥카의 중심 광장인 마요르 광장이 나온다. 시 청사와 대성당이 모두 이 광장에 자리 잡고 있다. 시 청사 앞에는 예쁜 노천카페도 몇 개 있다. 한 카페에 앉아 커피와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주위에 관광객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비수기에 여행하면 여유 있게 여행을 할 수 있어 좋다.

쿠엥카 대성당은 비탈진 언덕 위에 세운 건축물이다. 비탈진 왼쪽으로 11개의 계단을 만들고 위로 올라가며 계단을 줄여 건축했다. 대성당은 원래 이슬람 사원이 있던 곳이다. 1182년에서 1270년 사이 사원을 부수거나 보수하고 지은 것이다. 1902년 벼락이 떨어지며 파사드가 파괴됐다. 이후 파사드는 네오 고딕 양식으로 다시 건축한 것이다. 로즈창 위로는 쿠엥카의 수호성인 성줄리언의 조각상을 세웠다. 앞에서 바라보는 대성당은 정말 아름답다.

대성당 내부로 들어가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최후의 만찬이다. 예수님을 비롯한 총 13명의 인물을 실물 크기 나무로 조각해 색을 입힌 작품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처형될 것과 유다가 배반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계셨다. 은 주머니를움켜쥐고 앉은 유다의 모습이 섬뜩하다.

13세기에 지은 예배당은 본당 외에 침례 예배당, 가정 예배당, 무뇨즈 예배당 등 모두 23개의 작은 예배당으로 구성돼 있다. 예배당에는 12세기에 제작된 성모와 아기 예수, 13세기에 제작된 슬픔의 성모, 기독교 이단을 벌하는 성인의 조각품도 보인다. 예배당마다 성인 이야기와 거기에 맞는 성화 또는 조각품들이 전시돼 있다.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는 16세기에 제작된 것도 있고 현대 예술가들이 제작한 것도 있다. 과거와 현대가 잘 어우러져 있는 것이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 온 빛은 성당 내부에 비쳐 신비로운 광채를 내고 있었다. 본당 중앙에 있는 성가대석은 18세기에 만든 것이다. 상단 47석 하단 47석 등 총 94석이 있는데 모두 호두나무로 제작한 것이다.

특히 상단 등받이에는 성인들의 조각을 새겨 엄숙함을 더했다.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찬양하는 성가대원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성가대가 부르는 찬양 소리에 우리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찬란한 우주를 바라볼 때 우리는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물의 영장으로 창조하셨다. 일곱 빛깔 무지개가 대성당 안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곽노은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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