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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반대에도 핵연료 재처리 해낸 일본···한국은 쌓아만 둔다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20/02/16 12:04



1977년 3월 지미 카터 미국 행정부는 일본 정부에 원전의 사용후 핵연료를 반출해 태평양의 미국령 팔미라 환초에 저장하자고 제안했다. [AP=연합뉴스]






1970년대 후반 일본이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사실상 강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사히신문은 전직 외교관의 증언을 토대로 당시 미국은 일본의 재처리를 막기 위해 태평양 외딴 섬에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을 건설하자는 제안까지 했다고 16일 전했다.

◇美 “팔미라 환초에 저장” 제안
당시 외무성 원자력 과장으로 미ㆍ일 협상에 관여했던 가네코 구마오(金子熊夫ㆍ83)는 “미국이 하와이에서 1600㎞ 남쪽의 팔미라 환초에 (일본의) 사용후핵연료를 당분간 저장하자고 제안했다”고 신문에 밝혔다.

이는 미국이 일본의 핵무장을 그만큼 경계했다는 것을 뜻한다.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면 핵무기에 전용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평양 외딴 섬으로 반출해 이런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게 미국의 구상이었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1968년 미ㆍ일 원자력협정 체결 때 사용후핵연료의 일본 국내 재처리를 승인받았다. 하지만 74년 인도가 첫 핵실험을 강행하자 미국의 생각도 바뀌었다. 잇따른 핵 도미노를 막기 위해 각국에 핵연료 재처리 자제를 요청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도 예외는 아니었다. 77년 1월 집권한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은 2개월 뒤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총리와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재처리 계획을 전면 포기하라고 압박했다.




1977년 5월 13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가운데 노란 드레스 입은 사람)의 초대를 받은 세계 주요7개국(G7) 정상들이 버킹엄궁에 모였다. 당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오른쪽에서 셋째)과 후쿠다 다케오 일본 총리(왼쪽에서 셋째)도 참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후 미국은 사용후핵연료를 일본 국내에 쌓아두지 못하게 하기 위해 아예 미국령 섬에 반출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가네코는 “미국으로부터 국제적인 저장센터 조성을 포함한 예비조사에 참여하도록 요구받았다”며 “(원전을 운영하는) 전력회사에 그런 내용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79년 6월에 작성된 미 정부 문서에 따르면 당초 미국은 후보지로 팔미라 환초를 비롯해 미드웨이 섬, 웨이크 섬 등을 검토했다. 그중 무인도인 데다가 지질이 안정적이고 시설을 짓기에 충분한 토지를 갖춘 팔미라 환초가 최적지로 낙점됐다.

◇美 핵 우방 英ㆍ佛 통해 우회 설득
그러나 일본은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연료 재처리에 나서기로 했다. 이미 완공한 이바라키현의 도카이무라(東海村) 재처리시설을 가동하는 동시에 때마침 핵연료 재처리 사업에 나선 프랑스, 영국과도 손을 잡았다.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미국의 핵 우방들을 이용한 것이었다.

아사히에 따르면 77년 9월 5일 영국과 협상에 나선 당시 통상산업성(현 경제산업성) 대표가 미국의 핵연료 저장 제안을 영국 측에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한마디로 돈을 벌고 싶다면 미국을 잘 설득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결국 일본은 이런 우회 전술을 편 끝에 미국의 양해를 얻어 77년 9월 프랑스, 78년 5월 영국과 사용후핵연료 총 3200t의 재처리 위탁 계약을 맺었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에서 재처리한 뒤 남은 플루토늄 총 37t은 해당국에 보관 중이다. 이와는 별도로 일본은 도카이무라 재처리 시설을 2006년까지 운영해 1000t 이상의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했다.




일본이 내년 가동을 목표로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에 건설 중인 재처리시설. 사진은 지난 2011년 4월에 촬영한 것이다. [교도=연합뉴스]






일본은 현재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六ヶ所村)에 연간 처리량 800t 규모의 새로운 재처리시설을 짓고 있다. 당초 2009년 시운전을 하려고 했으나 안전상의 문제가 계속 발생하면서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할 예정이다. 이 재처리시설이 가동되면 원전 가동 이후 남은 핵연료를 재활용하는 이른바 '핵연료 리사이클' 체계를 완성하게 된다.

◇내년 월성원전 포화…“대응 안이”
이에 반해 한국의 상황은 답보 상태다. 미국은 2015년 한ㆍ미 원자력협정(유효기간 20년)을 개정하면서도 한국 내 핵연료 재처리를 승인하지 않았다. 파이로프로세싱 등 핵무기 전용이 불가능한 일부 연구에 대해서만 허가해줬을 뿐이다.

그사이 한국의 각 원전에선 사용후핵연료가 임시 저장시설에 쌓여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내년 11월 월성원전을 시작으로 원전마다 포화 상태에 이를 전망이다. 현재로썬 저장시설 증설 말고는 뾰족한 해법이 없지만 이마저도 지역주민의 반발 등으로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최악의 경우 원전을 멈춰 세울 수밖에 없다.




월성 원전 사용후 핵연료 저장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서 정부도 고심하고 있다. 지난 12일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는 "다음 달부터 국민 여론조사에 착수하겠다"며 "(월성원전이 있는) 경주 등 지역에서도 공론화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역 반발로 83년 이후 저장시설 증설 문제를 단 한 번도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너무 안이하게 대응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설사 이번에 증설하더라도 언젠가는 또다시 포화 상황을 맞기에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상당수 전문가는 미국을 잘 설득해 국내에 재처리시설을 건설하는 것만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본다. 하지만 탈원전을 주창하는 문재인 정부가 미국에 내세울 논리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전 신·증설 계획 폐기와 노후 원전 폐쇄에 집중하면서 원전의 장기 운용과 관련이 있는 재처리시설을 요구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익명을 원한 한 원자력 전문가는 "과거 일본이 미국을 설득한 과정에서 잘 드러나듯 미국에 불가피론을 꺼내려면 그만큼 양국 관계가 돈독해야 하는데, 현재와 같은 한·미 관계 속에서 이런 요구가 먹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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