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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길 종교칼럼] 고통에서 해방

[몽고메리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2/09 14:52

평창 겨울 올림픽이 한국에서 9일 마침내 개막됐다. 올림픽에 참여하고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이 스포츠를 통해 선의의 경쟁을 하며 서로 우정을 나누어 평화롭게 잘 마치기를 기원한다. 앞으로 평창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중이나 그 후에 어떻게 평화를 계속 유지할 것인가?

누구나 평화를 원하지만 인간은 지상에서 온갖 고통을 겪으면서 살아가는 운명을 지녔다. 인간이 물질 부족 때문에 힘들어 하지만 더구나 정신적이나 육체적으로 괴로움이 더 크다. 더구나 누구나 반듯이 죽는다. 이 인간의 고통은 죄가 원인이 되어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그 고통을 완전히 해결할 수가 있다.

많은 종교가 있지만 죄의 문제를 직접 다루기보다는 대부분 공동선을 추구한다. 인간들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야 평화롭게 살아 행복을 얻기에 인간관계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들이 항상 죄를 짓기에 좋은 인간관계를 가질 수 없어서 고통을 겪는다. 죄가 서로 상처를 주고받게 하고 미워하고 증오하여 인간관계를 해친다.

바로 인간의 죄가 인간의 삶을 파괴한다. 인간이 죄를 회개하고 서로 화해를 해야 좋은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미 지었던 죄 자체는 누군가로부터 사면을 받아야 한다. 곧 죄를 용서받아야 진정한 고통이 없는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이 아무리 거룩한 삶을 살았다고 하여도 인간이 지은 죄를 사할 수는 없다. 그들을 따르는 이들을 위해 더 나아가 모든 인류를 위해 그들이 희생제물이 되어 스스로 죽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인간의 죄를 사해줄 권한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스스로 희생제물이 되어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 인간의 죄를 용서할 권한을 가지신 분이 오직 예수님뿐이시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던 이유는 인간의 고통을 없애주시기 위해서다. 인간의 가난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게 태어나셨고 가난하게 사셨다(루카 1:7; 코린토 2서 8:9).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온갖 번민과 갈등을 위해 모욕을 받으시며 가시관을 쓰셨고, 질병을 위해 채찍을 맞으셨고, 인생의 짐을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셨고, 그리고 인간의 죄사함을 위해 죄가 없는 분이 죄인들을 위해 사형수가 되셔서 대신 십자가 위에서 못박혀 돌아가셨다(요한 18:1-30). 따라서 예수님은 죄인들을 고통에서 해방시키는 구세주이시다(마태오 9:5-6.26-28).

인류는 늘 고통을 받아왔다. 평화를 얻었다고 하여도 곧 이어서 또다른 문제로 인해 평화롭게 살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병에 걸려 신음하고 있는 이들을 치유해주시고 마귀들인 사람들로부터 마귀들을 쫒아내셨다(마태오 8:16).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간청하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으셨다(마르코 1:41).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마음으로부터 진정한 평화를 얻는다(루카 24:36; 요한 14:27). 인간이 예수님을 통하여 병을 치유받으며 악마에서 벗어나며 평화를 얻을 수 있다.

예수님을 믿고 은혜를 받는다고 하여도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번민과 병과 악마에 시달리지 않고 영원히 평화와 행복만이 있는 천국을 마련하셨다(요한 14:2). 따라서 인간은 영원히 살 낙원에 대해 소망을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살면서 때로는 평화가 깨진다해도 절망할 것이 아니다. 비록 완전한 평화를 얻지 못한다고 해도 천국에 대한 믿음으로 세상에서 겪고 있는 온갖 어려움과 고통을 극복하며 살 수가 있다.

누구나 주님을 믿고 회개하고 기도한다면 축복받을 것이다. 그러나 고통을 완전히 벗어나 살 곳은 천국이다. 죄인들을 참된 평화가 있는 천국으로 데려가실 구세주 예수님을 믿고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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