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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그레이 칼럼] 천방지축 아이들과 일주일

천방지축 설치는 것은 아이들의 특권이다. 한국서 방문 온 조카네의 세 아이들과 일주일 함께 지내는 동안 중학생인 여자아이는 숨바꼭질 하듯 그림자없이 어딘가에 자주 숨었지만 존재감을 줬고 사내아이들은 어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따라 다녔다. 딸만 키운 나에게 남자아이들의 번잡스러움은 그러잖아도 어수선한 나의 집중력을 흩어 놓았다.

아이들 부모나 할머니가 어른들 괴롭히지 말라고 아무리 혼을 내어도 아랑곳없었다. 키는 장대처럼 커서 부모보다 큰 남자아이는 대단한 끈질김으로 모든 궁금증을 바로 풀려고 했다. 매사에 꼬치꼬치 질문이 많았고 12살 나이라 눈치 파악을 못하니 어른들의 대화를 자주 끊었다. 그 보다 2살 아래로 반에서 키가 가장 적어 번호 1번이라는 동생은 반대로 상황파악을 기막히게 잘했다. 그 아이도 호기심이 많기는 마찬가지였다. 긴 테이블에 둘러앉은 어른들의 대화가 궁금해서 테이블 아래로 살그머니 기어들어가서 납죽 엎드려 숨죽이고 귀 기울였다. 형과 아우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우리 세대는 아이들이 커서 집을 떠난 후라 집집마다 조용히 산다. 잠시지만 조카의 아이들이 우리들의 잔잔한 일상의 호수에 돌을 던졌다. 정신을 빼놓았고 혼돈을 주고 생기도 얹어줬다. 낯선 땅에서 자리잡느라 힘들었지만 아이들 키우며 웃고 울었던 과거를 회상하게 해줬고 그리고 그때가 황금빛 시절였음을 인식시켰다. 지금은 흥분한 조카의 아이들과 함께 뛰고 싶어도 몸과 마음이 장단을 못 맞춘다. 어떤 명소를 찾아가든 마음은 활기찬 아이들과 같지만 시간의 덫에 걸려 느릿한 걸음으로 뒤따르게 된다.

애틀랜타 다운타운에 있는 코카콜라나 CNN 센터, 수족관과 올림픽 공원을 거쳐서 스톤 마운틴 정상에 올라 날개단 아이들을 보는 재미는 톡톡했다. 특히 비안개 자욱하게 낀 날 찾아간 채터누가는 청명한 날씨로 아이들은 신이 났었다. ‘록 시티 가든’에서 바위 사이로 난 좁은 길과 돌담길을 돌면서 색다른 식물들과 사슴떼에 혹했다가 멀리로 7주를 볼 수 있는 바위 전망대에 올라 본 확 터인 전경에 가슴이 후련했다. 요정의 나라에서 흥겨운 동요에 뒤척이던 마음은 지하 260 피트 아래에 있는 절묘한 지하 폭포인 ‘루비 폴스’에서도 계속 들썩였다. 비가 많이 왔던 탓으로 145피트 높이에서 우렁차게 쏟아져 내리던 폭포수 또한 속을 시원하게 훑어줬다. 지상과 지하의 신비가 방문한 아이들에게 자연의 경이로움을 주었다.



예전에 조카가 찾아왔을 적에 데려가 보여준 곳을 기억 못하는 것은 나이탓으로 돌렸지만 불안함과 초조함이 많고 순발력도 떨어진 우리 부부의 변한 모습을 완전히 노출시켰다. 뒷자리에 앉은 방문자들이 민망하도록 남편과 교대로 운전하며 티격태격 자주 다투었다. 내가 운전하는 것이 두려워 잔소리하는 남편과 남편이 운전하는 것을 불안해 하는 나는 교통이 복잡한 도로에서 돕는다는 것이 오히려 서로의 허약한 감정에 생채기를 줬다.

바른 교육은 어떤 방법일까. 요란스런 아이들의 성격과 행동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애들 엄마는 “세 아이를 뭉치면 한 완벽한 아이가 된다” 해서 함께 웃었다. 셋으로 나누었지만 완벽한 아이를 주신 하느님의 축복이다. 나도 20년 전으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상처받은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고 싶다. 얼룩진 옷을 세탁기에 넣듯이 묵은 버릇과 아픔을 깨끗이 씻어내고 따스한 사랑으로 아이의 성품을 바르게 잡아주며 그동안 내가 살며 배운 지혜로 아이가 건전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도록 돕고 싶다.

내가 키운 딸들은 한국의 교육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겪지 않고 자라서 단순한 면도 많고 좀 어수룩하다. 머리 회전도 느리고 눈치도 못보는데 옳고 그름은 분명해서 애매한 회색 영역이 그다지 없다. 영악하지 못하고 어쩌면 아량과 배려가 부족한 나를 닮아 좀 고지식한 성인들이다. 보태서 재치를 피우는 융통성도 별로 없어서 간혹 나를 답답하게 하지만 잔머리를 쓸 줄 몰라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이번에 머리가 확확 돌아가는 조카와 그의 아이들을 보면서 나의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나의 손자는 한국서 온 아이들처럼 용감하게 어른들 사이에 뛰어들고 질문을 많이 하면 좋겠다. 그리고 완벽한 아이 보다는 됨됨이가 바른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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