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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칼럼]추억은 언제나 아름답다

[애틀랜타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9/09 16:04

밤새 사진 찍는 꿈을 꾸었던 탓이었을 거다. 새벽잠에서 깨었을 때, 문득 사진기를 떠올렸다. 십 년 전이었나, 사진 찍는 재미에 흠뻑 빠져서 천지를 돌아다녔었지만, 마지막으로 카메라를 만져본 것이 거의 3년 전이었다.

모닝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창가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밤비를 밀어낸 해맑은 아침 햇살이 나뭇가지 끝에 가을빛을 달아 놓았다. 동네 입구에서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아이와 무릎을 구부린 채로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의 모습. 내 기억 어디 즈음에도 그림처럼 남아있는 것 같은 장면이었다. 창밖 풍경을 바라보면서 마치 영화 속 스틸컷 같은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책상 서랍에 처박아 두었던 카메라를 꺼냈다. 먼지를 털다 보니 그 속에 메모리 카드가 들어 있다. 거의 오 백 장이 넘는 사진들이 저장된 것을 잊고 있었다니. 컴퓨터에다 사진 파일을 옮기며 다시 한번 그들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갑자기 울음이 터질 뻔했다. 폭포 옆에서 호숫가에서, 숲속에서 바다에서, 그때의 나와 함께 했던 지인들의 모습. 이젠 단 1초의 눈 맞춤조차도 꿈꿀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나버린 얼굴들이다.

지난날 내 삶의 지렛대가 되어 주었던 사람들, 내가 힘들 때 내 곁을 지켜주었던 사람들, 이 세상 어떤 것도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그때도 모를 리 없었건만, 돌이킬 수 없는 작별을 하고서야 겨우 그들의 귀중함을 깨닫는 나의 어리석음이라니.

흔히 사람들은 과거를 되짚어 보기보다는 미래를 보고 사는 것이 더 좋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일부러라도 지난날을 추억한다. 내 뇌 속에 각인 되어있는 여러 모습의 기억들. 슬픈 기억은 슬픈 대로 기쁜 일은 기쁜 대로 추억한다. 후회나 회한으로 곱씹기보다는 그때의 경험으로 얻어진 지금의 대가에 만족감을 느낄 때 나는 참 행복하다.

‘므두셀라 증후군 (Methuselah syndrome)‘이라는 심리 용어가 있다. 이 증후군의 이름인 ‘므두셀라’는 성경에서 969세까지 살았다고 하는 최장수 인물이다. 이 이름을 처음 사용했던 사람은 자신의 묘비명에 “오래 살다 보면 이런 일이 생길 줄 내가 알았지.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라고 쓴 유명한 아일랜드 작가 조지 버나드 쇼 (George Bernard Shaw)다. 과거를 회상할 때 좋은 것만 떠올리고 좋았던 과거로 돌아가기만을 열망했던 므두셀라의 성품 때문에 이름 지어진 이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의 심리적 특징은 현실 도피 성향이다. 가혹한 현실을 직면하기보다는 행복했던 과거의 시간에 머물려 하고, 자신의 불행했던 기억을 행복한 추억으로 왜곡시킨다.

몇 년 전에 이 증후군에 관한 칼럼을 읽다가 “혹시 나도 그런 거 아니야?” 하면서 혼자 웃었었다. 그렇다. 신기하게도 지난날의 내 추억은 모두 아름답다. 어쩌면 나도 므두셀라 증후군 환자처럼 언짢은 것들은 누락시키고 내가 원하는 기억들만 골라내서 좋은 기억으로 왜곡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날의 기억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그냥 아름다운 추억일 뿐, 사랑하고 이별했던 아픈 추억을, 누군가로부터 배신당한 쓰라린 기억을, 어찌 내가 아름답게 만들 수 있으랴.

아침결에 2년 전에 세상을 등진 두 사람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우연히 보면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감정이 나도 모르게 울컥 올라왔었다. 그래도 함께했던 지난날의 소소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그들을 추억하고 보니 서늘했던 마음에도 빙그레 웃음꽃이 핀다. 그래, 지난날 내가 누군가를 사랑했고, 그가 사랑했던 누군가가 나였음을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삶이 더 귀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지금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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