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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그레이 칼럼] 폴라와 제니퍼가 준 것

버지니아주 샬롯츠빌에 머무는 동안 두 여인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통해서 다시 나를 확인한 기회를 가졌다. 낯선 지역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과 사귄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샬롯츠빌 다운타운 메인 스트리트는 자동차 통행없이 시민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다. 길 양쪽으로 늘어선 상가들은 손님을 끄느라 법석부리지 않고 싱싱한 식물들과 꽃에 조각상이 어울려 멋을 보태며 안정감을 준다. 야외 식탁을 마련한 식당들처럼 커피숍도 테이블을 밖으로 연장했다. 커피잔을 들고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을 보다가 털이 부숭숭한 큰 개를 데리고 옆에 앉던 여자와 인사한 것이 그만 의자를 돌려 얼굴을 마주보게 했다. 내 덩치만한 개는 스스럼없이 나에게 몸을 주고 엎드렸다.

원래 애틀랜타 출신이고 35년 전에 버지니아대학에 특수교육 석사과정을 공부하러 왔다가 그만 눌러앉았다는 폴라는 교직에 봉사하고 퇴임했다. 이제는 정말로 하고 싶은 일 한다며 사회정의 구현에 열심인 활동가다. 워싱턴DC의 시민모임에 참여하고 변화를 위해서 주변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한다. 그녀를 통해서 나는 샬롯츠빌 지도자들이 발전의 명목으로 은근슬쩍 진행하는 백인 중심의 정책을 알게 됐다. 인종차별은 여러 형태의 얼굴을 가졌다.

나와 나이나 취향이 비슷한 폴라는 오랫동안 사귄 지인처럼 편안했다. 처음 만났지만 우리는 능청스럽게 수다판을 벌렸다. 우습지만 평소에 남편과 전혀 대화할 수 없는 시사문제를 그녀와 했다. 정치가들과 사회환경이 도마에 올랐고 여행하며 보고 느낀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었다. 아일랜드 남자와 결혼해서 그곳으로 이주한 그녀의 딸이 사는 지역은 내가 두번 찾아갔던 곳이다. 그곳에서 시리아 난민을 돕는다는 딸이 아이 낳기를 고대하는 그녀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내 손자를 탐냈다. 언젠가 애틀랜타에 가족을 보러 오면 꼭 앨라배마에 들리기로 했다.



폴라를 통해서 제니퍼를 알게됐다. 내가 한국계 이민자인 것을 안 폴라는 불고기를 아주 좋아한다고 탄성을 냈다. 그녀에게 불고기와 김치를 소개한 여자가 역시 한국계인 제니퍼다. 샬롯츠빌 시민들에게 한국전통음식을 맛보이며 한국을 홍보하는 그녀는 샬롯츠빌에서 30분 거리인 에스몬트에 농장을 가졌다. 누군지 궁금해서 주말에 시티 마켓으로 그녀를 만나러 갔다.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마켓에서 그녀의 텐트를 찾아가 인사했다. 그녀는 여러 한식과 다양한 김치로 손님을 끌었다. 그녀의 ‘불고기 볼’은 심플하고 상큼했다. 손님들로 바쁜 그녀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연락처를 받고 떠났다. 다음날 우리는 전화로 사귀었다. 그녀는 나와 같은 해에 미국에 이민 왔다. 충청도 공주에서 매릴랜드주에 도착한 것은 42년 전, 그녀가 14세였을 적이다.

그곳에서 오래 살다가 6년전에 버지니아주에 25 에이커의 땅을 사서 이사했다. 15 에이커는 숲이라 두고 10 에이커에 집을 짓고 흙을 갈았다. 평소 자연과 건강에 관심이 많다가 무엇이든 씨를 뿌리면 잘 키워주는 흙에 푹 빠졌다. 성장한 세 딸은 각자의 삶을 살고 직장일로 바쁜 남편은 농사에 관심이 없어 농장은 모두 그녀 몫이다. 닭과 터키, 메추리 등 온갖 새종류를 키우고 텃밭을 만들어 채소를 재배하니 해가 뜨면서 해가 질 때까지 그녀의 하루는 바쁘다. 하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라 행복하다. 여분의 계란을 시티 마켓에 가지고 가서 판 것을 시작으로 이제는 자신이 요리한 한식으로 손님들과 마주선다.

80이 넘은 그녀의 어머니는 된장 고추장 김치를 아직도 손수 담그신다.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도우면서 은연중에 요리의 기본을 전습했다. 자연식으로 키운 싱싱한 채소로 내 가족을 위한 음식을 만드는 자세로 정성을 담아 요리를 한다. 수요일 오후 공원에서 열린 마켓에서 다시 그녀를 만났다. 그녀가 만든 아보카도 스시를 손자는 맛있게 단번에 다 먹었고 남편은 닭튀김과 불고기 플레이트를 주문했다. 모처럼 한식을 먹으며 고향을 생각했고 한식세계화에 앞장선 그녀가 자랑스러웠다.

폴라는 나에게 소중한 삶의 자세를 확인시켜 줬고 또한 모국을 무척 사랑한다는 강인한 여인 제니퍼는 내가 어디서 왔음을 잊지 말도록 상기시켜 줬다. 두 여인은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해준 고마운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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