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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나뭇잎 하나

미국에 오래 살다 보니 야자 하며 말을 놓고 지내던 어릴 적 친구들이 근처에 없는 것이 아쉽다. 그런 친구는 거의 다 한국에 있고 이따금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고작이다. 그나마 우리 나이 또래는 ‘컴맹 세대’라 카톡을 나눌 수 있는 친구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며칠 전 그중 한 명과 나눈 문자 중에 이런 대화가 오갔다. “이제 우리 나이쯤 되면 말이야, 어느 날 갑자기 죽어도 사람들이 ‘그 사람 살 만큼 살았군’ 할걸”. “야 인마 무슨 소리야. 이제 겨우 80의 문턱이다. ‘구구 팔팔 이삼사’라고 하지 않던!” ‘구구 팔팔 이삼사’는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앓고 4일 만에 죽자는 백세시대의 유행어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사람이 일흔 살을 사는 것은 예로부터 드물다)는 이제는 옛말이 된 세상이다.

내 딴엔 호기 있게 ‘구구 팔팔 이삼사’ 했지만, 그 친구의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죽음의 문턱에 다가서는 느낌이 든 것도 사실이다. 어느 유행가 가사 말마따나 “세상에 올 때 내 맘대로 온 것은 아니지만” 세상을 떠나는 것 또한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아무리 백세 시대라지만, 백세를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구나 심신이 아울러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백세 인생은 거의 모두에게는 희망 사항일 뿐이다.

대개 자기가 태어난 날은 알아도 이 세상을 떠나는 날을 아는 사람은 없다. 죽음 특히 자기 죽음은 별로 생각해 보고 싶은 일이 아니고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그러나 내 나이 70을 넘고 나서 내 주위를 떠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게 되면서 죽음은 자주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까? 인생이 연극이라는 말도 하는데 결말은 어떻게 날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게 어디 알 수 있는 일인가.

우리가 갖는 죽음에 대한 연상은 극히 부정적이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때문이다. 더러는 죽음을 긴 잠에 빠져드는 것이라고 하지만, ‘서스펜스의 거장’으로 불리는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은 죽고 나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죽어봐야 안다고 했다. 이 세상 누구도 우리가 죽은 뒤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추측과 예상과 희망 그리고 믿음이 있을 뿐이다.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아마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아무리 종교적인 신앙심이 깊은 사람도, 천재적인 과학자나 지성인도 밝혀낼 수 없는 영원한 수수께끼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정도가 젊은 사람일수록 더 심하다고 하는 연구 결과도 있다. 70~80대 노인들은 오히려 평상심을 갖고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고 한다. 살아갈 날들이 빠르게 줄어들고 죽음이 현실로 다가오는데 대한 현명한 대처라고 할 수 있다. 죽음이 필연일진대 두려워하지 말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데서 마음의 평온을 찾자는 것이다. 이는 미지의 세계에 대해 갖는 불안감이나 두려움을 호기심으로 대체하는 마음가짐에도 통한다.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나는 내가 태어나기 전 수십, 수백억 년 동안 죽어 있었는데 전혀 불편을 못 느꼈다”라는 마크 트웨인이나 “죽음은 삶보다 더 흥분되고 마음 설레는 일”이라고 한 2차 대전의 명장 조지 패튼의 말은 이런 맥락이다.

신라 때 향가인 월명사의 ‘제망매가(祭亡妹歌)’를 근거로 쓴 박제천(朴堤千) 시인의 ‘월명(月明)’ 이라는 시가 있다. 죽음을 자연스럽고 대수롭지 않은 일상사(日常事)로 묘사해 마음을 가라앉혀 준다.

“한 그루 나무의 수백 가지에 매달린 수만의 나뭇잎들이 모두 나무를 떠나간다./ 수만의 나뭇잎들이 떠나가는 그 길을 나도 한 줄기 바람으로 따라나선다./ 때에 절은 삶의 무게 허욕에 부풀은 마음의 무게로 뒤처져서 허둥거린다./ 앞장서던 나뭇잎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어쩌다 웅덩이에 처박힌 나뭇잎 하나 달을 싣고 있다./ 에라 어차피 놓친 길 잡초 더미도 기웃거리고 슬그머니 웅덩이도 흔들어 놀밖에/ 죽음 또한 별것인가 서로 가는 길을 모를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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