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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기고] 가을에 온 편지

내 친구 춘강이는 해마다 가을이 깊어질 때 내게 편지를 보낸다. 요즘처럼 IT 정보 기술에서 나아가 통신기술까지 합하여진 ICT가 등장한 이 시대에 그는 굳이 한 자 한 자 엮어 손으로 쓴 편지를 보낸다. 옛날 대학에 다닐 때 강의 노트를 서로 바꾸어가면서 공부하며 보든 그때의 눈익은 글솜씨다.

재미있는 것은 모든 글씨체에도 그림처럼 성격이 있고 풍기는 멋이 있다. 난 잘 익은 석류알처럼 빽빽이 채워진 이 가을 편지를 들고 내가 아침마다 걷는 공원에 간다. 벌써 참나무들이 옷을 갈아입고 자연은 색채의 잔치가 한창이다. 발밑에 화려한 카펫은 푹신푹신, 나를 그 작은 오솔길 녘에 있는 벤치로 데려간다. 거기서 다시 편지를 펼쳐 든다. 친구 중 친구인 춘강이 편지를.

얼마 전에 독일에 나가 살던 아들을 암으로 읽었던 그의 아픔의 사연은 아직도 오열의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난 읽던 눈을 멈추고 하늘을 본다. 모든 만남은 이별을 내포한다고 했나? 어미로서의 살을 에는 경험엔 잉크가 번져있다. 세상 속에서의 관계, 우린 이런저런 모양으로 관계의 거미줄 안에 산다. 그녀와 나의 바위 같은 관계는 오늘을 사는 나에게는 커다란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난 카카오보다 그 편지를 발돋움을 하고 기다린다. 그러다 어느 날 우표가 다닥다닥 붙은 가을편지, 반가움과 정겨움이 다름질한다. 우린 서로를 공감하고 나누며 생의 언덕과 계곡을 같이 나누며 일으키고 붙잡아주고 서로의 버팀 돌이 된다. 사랑도 여러 가지, 관계도 여러 가지, 꽃도 여러 가지 이 가을엔 나뭇잎도 여러 가지다.



난 어렸을 때 놀다가 주운 하얀색 돌에 섞인 분홍색을 보면서 탱자나무로 둘린 우리 집 울타리 한 귀퉁이를 손으로 흙을 파고 그 차돌을 파묻고는 물을 열심히 주면서며칠 있음 분홍색 벚꽃이 활짝 피기를 기대하고 기다린 적이 있다. 기대가 이루어졌을까?

코로나로 ‘집콕’이 된 나를 보려 들린 아들이 하는 말, “요즘엔 책들도 E-Book이 있으니 이젠 저 많은 책들 좀 버리세요” 그건 어림도 반푼어치도 안되는 억지다. 난 이 책들을 좋아한다. 책마다 내 손을 잡고 떠나는 여행길의 맛이란 … 페이지를 넘길 때 사각사각 소리, 종이에서 나는 책 향기를 맡는다. 당치도 않은 불평을 밀어내고 춘강이의 편지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녀의 아픔에 동참하려고 가까이 다가간다.

한폭의 그림 같은 이 가을, 어느 날 나처럼 벤치에 앉아 그의 길고 가느다란 손으로, 인간의 제일 아름답고 강한 사랑으로 그만의 뛰어난 예술적 감각으로 썼을 그의 글을 읽노라면 조각품처럼 고왔던 춘강이의 모습이 화면을 채운다.

아픔으로 살짝 덮인 그의 얼굴이 그립다. 그리고 나 사는 동안 그에게 약이 되는 사랑의 친구가 될 것을 재다짐한다.


김혜자 / 성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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