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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첫 태권도 명인의 이유있는 쓴소리

허겸 기자
허겸 기자

[애틀랜타 중앙일보] 발행 2018/05/14 미주판 1면 기사입력 2018/05/13 18:07

“국가유공자 찬밥, 해도 너무해”

앨범을 펼쳐보이며 지난 시절을 회상하는 김유진 명인.

앨범을 펼쳐보이며 지난 시절을 회상하는 김유진 명인.

46년 3월 지도관 8번 수련생 입문
육군 헌무관 창설, 한국전 참전
65년 도미, 미군 교관 하며 도장 운영

최초 타이틀 휩쓴 ‘태권도의 산증인’
지난달 사상 처음 ‘명인’ 추대
성실·예의로 지켜온 72년 무도인 삶


전 세계 태권도 사상 처음으로 ‘명인’으로 추대된 원로 태권도인 김유진(87·호적명 김수진·미국명 유 수진 킴) 미주태권도고단자회 상임고문은 “애국자를 홀대하는 나라엔 미래가 없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무적 판단으로 부침을 겪는 고국의 국가 유공자 대책의 실상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명인 추서식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김유진 명인.

명인 추서식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김유진 명인.

미주 태권도계가 공인하는 ‘그랜드 그랜드 마스터(10단)’인 김유진 명인은 1931년(호적상 1932년) 태어나 해방 이후 고국에 두 번째로 들어선 체육관인 ‘지도관’이 1946년 3월 3일 만들어질 무렵 8번째 수련생으로 등록하면서 72년간 무도인의 길을 걸어왔다.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 헌병 장교로 복무하며 사활을 걸고 평양 언저리까지 북진하기도 했던 그는 전후 육군 헌병학교 무예관인 헌무관 창설을 주도했으며, 주한미군을 가르친 인연으로 1965년 미국으로 건너와 조지아주 어거스타에 있는 미 육군부대에서 무예 교관으로 파견 근무하며 밤에는 태권도장을 운영했다. 그간의 노고와 헌신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달 텍사스 댈러스에서 열린 태권도 명예의 전당 시상식에서 제1회 명인으로 추대됐다.

지난 11일 로렌스빌의 도장에서 만난 김유진 명인은 호국의 달인 6월을 앞두고 작심한 듯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소신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지난 3월 정부 고위 인사가 불참한 8주기 천안함 용사 추모식에 관한 신문기사를 읽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고 운을 뗐다.

김유진 명인이 쓰라린 마음을 느꼈다는 중앙일보 3월 27일자 '정부 인사 없는 천안함 추모식' 1면 사진.

김유진 명인이 쓰라린 마음을 느꼈다는 중앙일보 3월 27일자 '정부 인사 없는 천안함 추모식' 1면 사진.

김 명인은 “정부에선 서해 수호의 날에 참석하기로 했다고 이유를 댔다지만, 46용사의 영정 앞에서 유족이 눈물을 닦는 중앙일보 1면 사진을 보면서, 그리고 연평해전 전몰장병 추모식 불참 소식을 접하면서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 심정이었다”고 토로했다.

그러곤 정치적이요, 진영논리에 빠진 결과라는 의견을 곁들였다. 그는 “일국의 대통령은 마땅히 군 통수권자를 겸직한다”며 “모든 군인을 통솔하고 보살펴야 할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전쟁터에서 죽은 군인을 푸대접하는 판단은 백번 양보해도 납득할 수 없는 정치놀음이자 자기편 추스르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내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1946년 지도관에 입회한 기록.

1946년 지도관에 입회한 기록.

김 명인은 한국 보훈처를 찾아갔던 일화도 털어놨다. “고국 방문길에 비록 사전에 약속하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바쁘다, 기다려달라’며 보훈처 고위 공무원 누구 하나 반기지 않았다”며 쓰라렸던 기억을 더듬었다. 그는 미국만 해도 환송 또는 귀환하는 파병 장병들과 공항에서 마주치면 시민들은 여지없이 길을 터주고 양옆에 늘어서 손뼉을 쳐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를 위한 숭고한 희생’이란 단어가 진영논리에 빠져 자의적으로 해석되는 현실을 개탄했다. 김 명인의 ‘애국론’은 숭고함을 바탕으로 한다. 눈앞에 이익보다 조국의 안녕을 위한 헌신이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기 때문에 더는 자신과 해당 사항이 없다고 전제하면서, 한국전쟁 참전 유공자의 월 연금 수령액이 채 30만 원이 안되는 현실을 언급하다 K팝에 대해서도 한마디 거들었다.

김 명인은 “젊어서 성공과 출세를 하려는 청년들의 노력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마치 K팝 가수들만 국위를 선양하는 사람들로 비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애국이 거창한 것은 아니고 휴짓조각 하나 줍는 것도 애국일 수 있지만 나라를 위해 목숨까지 바친 이들은 정작 유공자로 대우하지 않는 고국 정부의 판단은 그래서 더욱 더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재외동포로서 남북한과 미국이 평화 무드를 조성하며 종전선언에 한 걸음 다가선 것은 환영한다는 김 명인은 “제아무리 세상이 바뀐다 한들 과거의 공적을 외면해선 안 되는 것”이라며 “이익에 집착하지 않고 국위를 선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들의 노고를 왜 숭고하다 하는지 그 가치를 이 세대가 다시 한번 깊이 성찰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애초 김유진 명인은 지난달 명인 추대식 직후 일찌감치 이런 의견을 밝히려 했다. 하지만 그 무렵 후배 원로 태권도인이자 미국 동남부태권도연맹 회장을 지낸 박장률 관장이 83세를 일기로 작고했다는 비보를 접하고 인터뷰를 늦췄다. 슬하에 막내딸과 아들 셋을 뒀다. 8단 이상의 그랜드마스터인 아들들은 모두 동남부 일대를 중심으로 태권도장을 운영한다.
미군 헌병들을 상대로 격파시범을 보이는 김유진 명인.

미군 헌병들을 상대로 격파시범을 보이는 김유진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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