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사람들] “시카고, 만만치 않아 단련되는 곳”
시카고 생활 16년 이준성 씨
그는 한국에서 정당과 공직, 미디어 업계 등지서 20년 가까이 일했다. 2002년 말 한국 대선이 끝난 후 정치에 대한 기대를 접고 시카고행을 선택했다. 손위 동서가 먼저 기반을 잡고 있던 곳이었다.
시카고 중앙일보서 5년 가량 마케팅 업무를 보던 그는 2008년 파트너십으로 도매업에 직접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 무렵 발생한 금융 위기 때문에 적잖은 어려움을 겪고 3년 여만에 비즈니스를 접었다. 이후 얼마 간 재충전을 하면서 의류업을 하는 부인을 돕는 한편 노인 관련 서비스 시설에서도 일을 했다.
비슷한 연배의 이들처럼 그의 삶은 한국 현대사의 한 가운데를 지나왔다. 중앙대 기계공학과 입학 후 10.26을 겪었고 12.12 때는 제 1한강교를 건너지 못해 학교에서 밤을 세웠다고 회상했다. 이듬해 ‘서울의 봄’ 때는 서울역과 광화문에 거의 매일 나가다시피 했다. 학도호국단, 백골단, 페퍼포그와 같은 단어가 난무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총학생회장에도 출마했었다. 이후 김덕룡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함께 일을 했고 김선기 평택시장 선거 캠프에 이어 이회창 대선 캠프에도 참여했다고 밝혔다.
“열심히 정직하게 성실히 살자”는 원칙을 갖고 있다는 그는 “돌아보면 후배들과 눈높이를 많이 맞추지 못한 게 조금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서 별정직 공무원으로 재직할 당시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나갔다. 하지만 시카고에 와서는 외려 여행을 많이 하지 못 했다고 아쉬워했다.
홍콩에서 연수 중인 큰 아들(28)과 어바나-샴페인의 일리노이대 공대 졸업 후 금융학 인공지능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작은 아들(25)은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에게 가장 큰 보람이자 힘이다.
노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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