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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원 칼럼] 마음에 쌓인 먼지

20여 년 전 한국에서 애리조나로 첫 미국 출장을 왔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 가운데 하나가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였다. 마치 별천지에 온 것 같았다.

어린 시절 푸른 하늘은 삼천리 금수강산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다 자라서 해외 출장을 다니다 보니 외국 어디를 가더라도 한국보다는 공기가 그나마 낫게 느껴지곤 했다.

선진국들은 대기 관리를 잘 하고 있었고, 개발이 덜 된 나라는 비교적 오염이 적었다. 그 무렵 찾았던 아르헨티나 마르델 플라타의 진초록 바다와 푸른 하늘, 흰구름, 푸른 초원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가끔 미국에 다니러 온 지인들로부터 "미국에서는 셔츠를 이틀 정도 입어도 괜찮더라"는 말을 듣는다. 서울 살던 시절, 출근 길 지하철과 버스에서 시달리고 나면 사무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후줄근해졌던 셔츠 기억이 났다.



요즘 한국은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하다. 해마다 봄철이면 누렇게 날아오던 황사보다 더 무섭다는, 거무튀튀한 먼지가 온 국민의 삶을 덮치고 있다. 오죽했으면 법정 변론에까지 이용됐을까.

사법권 남용 혐의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첫 공판에서 "검찰이 미세먼지로 허상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검찰발 미세먼지에 의해 형성된 신기루 같은 허상에 매몰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의 주장을 정치 보복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려는 의도로 일축하고 신기루인지 허상인지는 재판을 통해 가려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색채와 이념에 가려 시야가 좁아진 대롱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고, 단지 진보 대 보수 공방의 문제만도 아니다. 내로라하는 자리에 오른 이들일수록 다음 정권에서 법정에 서는 일이 잦고 확 뒤바뀐 사회 기준에 의해 폄하되거나 재평가 되기 일쑤다.

최근 한국이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미세먼지가 광화문 사거리 이순신 장군 동상과 남산 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과 마음조차 가려놓고 있는 듯하다. 사람들 가슴 속에 내려 앉은 마음의 미세먼지는 더께가 됐다.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가고 싶은 그 '섬'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눈은 감고, 귀는 닫는다. 내 편이면 무조건 옳고, 상대편이면 나쁘다. "잘못된 가치를 지닌", "상종 못할 존재"가 된다.

시야를 방해하고 숨을 못 쉬게 하는 미세먼지 못지 않게 심각한 것은 실재를 알 수 없는, 멀어진 마음과 폐쇄된 생각이다. 물리적 통증보다 심리적 아픔이나 갈등을 견디기 힘든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닫힌 사회의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시카고 겨울의 끝이 보인다. 꽁꽁 얼어붙은 대지가 가슴을 열어 젖히듯 케케묵고 낡은 사고의 틀을 해체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다. 큰 숨 들이쉬고 해묵은 마음의 먼지부터 떨쳐낼 수 있으면 좋겠다. 마음 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깨끗한 자연을 누릴 수 있는 환경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인가. [발행인]


노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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