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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사람들] 시카고 보험업계 전설 이지용 장로

“시카고는 영원한 고향”

유학생으로 미국 땅을 밟은 때가 1967년 1월 7일이다. 그 때 이지용(사진•77)씨는 미시간주립대 입학허가서와 단돈 200달러를 갖고 왔다. 시카고의 한 캔디 공장에 취직, 학비를 마련한 후 등록을 마쳤다.

그는 당시 학교를 다니면서 배고픔이 무엇인가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한 학기를 마치고 나서 시카고 루즈벨트대로 옮겼다. 다시 캔디 공장을 다니면서 깡통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다가 결국 위궤양으로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그 무렵 미 중서부 한국 유학생 총회장(3대)을 맡았는데 30여명의 회원 중 시카고 중앙일보 초대 사장 홍두영씨가 재무부장을 맡았다고 회상한다.

이지용씨가 ‘스테이트 팜’ 보험사와 정식 인연을 맺은 게 1971년이다. 하와이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아시안 최초의 입사였다. 뉴스위크 잡지에 탑 에이전트 22명 의 한 명으로 얼굴 사진이 실리기도 했다. 1년만에 전국 에이전트 탑 50명에 선정돼 프레지던트 클럽에 들어갔다. 오크 파크 지역 사무실에서 보험 일을 시작한 후 1974년 한인타운 중심가인 클락 길에 사무실을 오픈했다.



3명의 자녀를 키우며 보험업에 전념하던 그 시절, 갑작스레 이혼을 하게 됐다.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고 의욕을 잃었다. 10년간 실어증에 시달릴 정도였다.“ 그는 그 같은 시련이 하나님께서 훈련시켜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 기독교에 더욱 심취했다.
1990년 링컨 길로 오피스를 옮기고 은퇴하기까지 20여 년간 전미 탑 10에 항상 들었다. 1등도 두 번이나 했다.

그는 18년간 전국을 돌며 간증을 겸한 보험 세일즈 시스템 강연을 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로 가야 하며 하나님을 모른다면 인생은 헛 사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특히 유럽은 38차례나 다녀왔다고 한다. 축구도 무척 좋아한다. 시카고 한인 축구단을 결성(1974년)하고 내셔널 사커 리그를 만들어 토너먼트 대회서 우승을 한 경험도 있다. 미드필더로 뛰면서 미국, 독일 프로 축구팀 출신 선수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했다.

2013년 7월 정식 은퇴 후에는 한인문화회관에서 동호인들과 함께 탁구를 즐겼다. 그는 2년 간의 탁구동호회장을 끝으로 최근 애틀랜타로 이주했다. “몸은 떠났지만 시카고는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다. 시카고 동포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린다.”


James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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