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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기고] 글 쓴 보람

지겹도록 추위에 떨던 한겨울이 지나간 후 에머랄드 빛깔을 마주하는 초여름 기운은 다가오는데 청천 하늘이 푸르름을 안고 우주 전체를 짊어진 채 새털구름만 펼쳐내던 어느 날 친정어머니가 생각났다. 어머니께서 자초지종 말씀을 안 해 주셔서 백퍼센트 전부는 알 수 없으나 어릴 때 조금 본 것이나마 글을 써 보고 싶었다. 삶의 심적 고난으로 온 산천을 둘러 땅을 치며 논밭고랑도 터져 흩어질 만큼 울화가 치밀어도 어머니께서 참으시고 조강지처로 꿋꿋이 살아오신 것을 소설 형식으로 표현했다.

신문기자 분의 말씀이 그냥 두기엔 아깝다고 책을 내라고 하셔서 이런 글도 책이 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글 쓴 사람의 생각과 독자들이 읽고 느끼는 면은 다르다고 하셨다. 그래서 1998년 5월 자전소설로 한 권의 책이 처음 출간되었다. 그 이듬해에는 믿음생활의 체험담을 쓴 후 어느 목사님께 보여드렸더니 자녀들을 가진 어머니들께 본이 될 수 있는 내용이니까 글 그대로 책을 내서 많은 여성들이 읽을 수 있게 하라고 하셔서 신앙수기를 출간했다. 또 시카고 일간지에 수필을 게재해 주신 편집국 분들께 감사한 마음으로 수필집을 출간했다.

그렇게 3번 책을 냈어도 글을 한국문단에 보내 본 적이 없었는데 지난 1월 ‘신인 문학상 공모’가 있는 것을 보고 처음으로 응모했다. 사실 수기 쓴 것을 보내려고 했으나 생활수기 공모가 없어서 수필 5편을 보냈지만 글의 품위도 없는 것 같아서 그냥 잊어버리고 있었다.

방 안의 전등, 옷장, 침대시트, 창문의 블라인드 등 모두 옅은 핑크색인데 들어오면 밝고 온화하며 평온한감마저 들어 글의 거울이 비취는 것 같다. 그래서 아침 안개가 살짝 걷힌 후 쏟아내는 햇살처럼 글 소재가 풀잎이 바람에 일듯 한다. 글을 쓰면 즐겁고 따끈한 물 한 컵에 레몬을 꾹 짠 찻잔만 바라봐도 수증기 따라 낭만을 불러오는 것 같아 활력이 넘친다. 소설이면 글 속의 주인공이 되어 은근히 무드에 잡혀서 행복감이 이글거릴 때도 있다. 원래 겁이 많아 뭐든지 시작하려면 기도부터 드리는 습관이 있어서 두 손 모아 마음을 바치고 글에 열중하면 서너 시간은 보통 그대로 앉아 있게 된다.



글을 보내고 며칠 후에 당선됐다고, 시상식이 4월에 있다는 뜻밖의 축하 소식을 받았다. 종합 문예지에 글을 써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으니 가슴 뭉클해서 마치 철없는 소녀가 이성에 눈을 갓 뜨고서 애인과의 첫 만남, 그보다 더욱 더 설레임 바로 그런 것이었다. 아무도 아직 밟지 않은 백사장 위를 맨발로 폭신하게 걸어보는 느낌이었다. 만월이 비치는 월야에 으스레한 등불을 켠 채 로마의 신화 큐우핏 사랑에 빠져서 예쁜 발레리나 드레스에 포옥 감싸인 것 같기도 했다.

또한 래즈베리의 달고 상큼한 과즙이 입안에 톡 터진 것을 머금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은은한 음악 속에서 연인과 함께 감상에 젖어 든 기분이었다. 그리고 20대 청춘의 닻을 이마에 달고 유유히 항해하며 노 젓는 것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 같고 오곡백과 풍성한 농갓집에 진수성찬이 한 상 가득 차려진 듯 했다.

미숙하고 풋내기 같은 글을 수상작으로 좋게 평가 해 주신 심사위원분을 향하여 금, 은 보화로 채워진 고마운 마음이 어느새 태평양을 건너가고 있었다. 귀국하려는데 선물 생각 말고 몸만 오라고 오빠가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어디 그런가. 몇 가지 산 것을 챙겨서 출발했다. 인천 공항에서의 가족 만남은 향나무에서 진한 내음이 풍겨 나오듯 반가움이 천지에 퍼지며 메아리를 남기고 있었다.

이틀 후 약간의 우기가 있었지만 부드러운 춘풍이 서슴없이 옷깃을 건드리는 가운데 문학상 시상식에 참석했다. 화려하게 장식된 대강당 시상식장에서 수상자들은 순수하고 진솔하며 풍요로운 글의 대본과 함께 환한 전등 불빛 속에 파고들어 멋진 문학과 곱게 단장하며 아름답게 물들고 있는 듯했다. 상장과 금메달을 받은 후 “사단법인 새 한국 문학회”(한국문인) 이사장님과 편집주간 선생님께 감사를 드렸다. 또한 어질고 훈훈하며 정다운 올케언니로부터 한 아름 큰 꽃다발을 받았다. 어머! 이사장님께서 ‘시카고 특파원’이라는 특권을 내게 주시는 게 아닌가! 수줍어서 망설였지만 그래도 독자 분들께 감동이 되는 글을 쓸 수 있도록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그런 정성을 생각해 본다. (시카고 문인회원)


남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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