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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새벽길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길 위로 상큼한 바람이 불어온다. 어디서인가 새들의 합창이 들려오고, 이슬 구르는 잎사귀 사이로 불그스레 먼동이 튼다. 새벽길, 굵은 목소리에 플룻의 경쾌한 뮤직. 우리는 아득한 꿈길을 구름에 달 가듯 미끄러지게 걷고 있다. 앞 뒤로 번지는 포말의 수분이 얼굴에 닿아 촉촉한 새벽을 음미하면서 음악에 빠져든다. 울릉도로 떠나는 고기잡이 똑딱선에 오르기 위해 삼척 작은 항구를 향해 걷는다. 무거운 배낭을 맨 어깨의 시름도 잊은 채 아무도 깨어나지 않은 새벽길 위로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대학1년 여름 스케치여행을 떠났던 강원도 삼척 새벽길의 느낌이 왜 이리도 선명하게 살아나는 걸까?

우린 얼마나 흘러 왔을까? 얼마나 많은 날들이 깨어나고 다시 누웠던가. 꽃들은 피었다가 지기를, 그 뿌리의 생이 다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날들을 뒤척였던가? 하늘은 얼마나 많은 날의 그리움으로 바람이 되어 불고, 비 뿌리고, 이내 먹먹히 쌓이는 눈이 되는가.

밀려왔다 부서지는 파도의 그 끝도 없는 걸음이 아프게 다가오는데 우린 무엇이 되어 이렇게 늘그막까지 이방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지구의 반대쪽, 소리내 부르면 되돌아 오는 얼굴들. 해가 뜨면 해가 지고, 해가 지면 이내 먼동이 트는 날들이 빠르게 흘러, 되돌아 가기엔 너무 멀리 걸어온 세월. 서로의 거리에서 잃어버린, 아니 소중히 포개어 깊숙히 담아 놓았던 시간들을 끄집어 내어 그대들을 다시 만나고 있다.

솔 향기 가득한 길 모퉁이를 돌아서면 호수가 시작되고, 그 주변엔 억새가 지천에 자라 숲을 이루고, 청둥오리 한쌍이 미끄러지듯 새벽을 흐르는데 우린 그동안 호수의 잔잔한 적막처럼 너무 침묵한 건가? 새벽길을 걷다보면 그리움이 뒤에서 나를 밀고간다. 젊은날 내등을 밀었던 그 바람처럼... [시카고 문인회장]



지구의 저편에선 / 신호철

동이 트고 있어요
내가 돌고 땅이 돌고 나무가 돌아야
별이 지고 해가 뜬다는데
지구의 큰 축이 한 바퀴 돌아야
하루가 온다는데
이렇게 고요히 동이 트고 있어요
꽃 봉오리가 꽃을 피우듯
빛이 만든 여러 색으로
조금씩 하루가 피어나고 있어요
시계의 작은 톱니 바퀴 돌듯
지구의 하늘, 그 하늘 위의
작고 큰 우주의 하늘들이 회전하고 있다는데
기척도 없이 하루가 내게 오고 있어요
당신의 하루에 내가 서 있지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어 하늘만 보지요
가슴에 매달은 천금 보고픔에
지구의 저편에선 별이 뜨고 있겠지요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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