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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그 때 그 시절 그 자리에

갈 수 있을 때 멈추는 것도 지혜다. 갈 수 없는데 멈추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긴가민가 하거나 아니다 싶으면 그만 두는 게 상책이다. 세상에서 제일 위험천만한 사람은 자신이 다 안다고 믿는 사람이다. 자기만이 그 일을 해낼 수 있다고 장담하는 사람이다. 독재자의 전형이다. 모든 일을 독단적으로 판단하고 절대권력을 고집하면 독재자의 전형이 된다.

미주 전역에서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는 이름조차 구별하기 힘든 유사 단체 혹은 동일한 명칭으로 싸우는 한인사회의 분열과 갈등은 나만이 그 중책을 감당할 수 있다는 교만에서 비롯된다. 서로 헐뜯고 모함하는 이메일이나 카카오톡을 받으면 짜증나고 참담한 기분이 든다. 서로 상대방을 짝퉁이라 몰아붙이며 정통성을 주장 하는데 짝퉁이 짝퉁을 짝퉁이라 부르는 것 같아 보기에 역겹다. 정말로 그렇게 할 일이 없나. 싸우는데 바치는 힘과 에너지, 재력과 열정, 탁월한 경력을 인류의 미래와 복지, 힘 없고 고생하는 한인들을 위해 헌신할 수 있었으면!

올라 가면 내려 오는 게 상수다. 자리에 연연해 뭉기적거리면 볼썽사납다. 한 때 천하를 호령했다 할지라도 그 때 그 시절은 강물처럼 흘러갔다. 비록 유구한 역사의 물줄기 속에 거대한 방점을 찍는 역할을 감당했다 할지라도 때가 되면 내려가고 흘려보내야 썩지 않는다.

방점은 보는 사람의 주의를 끌기 위해 글자의 곁이나 위에 찍는 점이다. 명함에 적힌 직함이나 자리가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힘든 자의 손을 잡은 착한 손마디가 생의 위대한 방점을 찍는다. 오늘은 어제의 연장전이 아니라 내일을 사는 생의 착한 민낯일 뿐이다.



이태준의 수필집 ‘무서록(無序錄)’에는 물의 성격을 아름답고 성스러운 것으로 예찬하며 자연물을 인격체에 비유하여 그 천성에 순응하는 모습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덕과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물의 덕성을 크게 세 가지를 꼽는데 남의 더러움을 씻고 맑게 해주는 아름다움, 고이면 고인 대로 흐르면 흐르는 대로 자연에 맡기는 삶이 주는 즐거움, 그 안에 사는 생명을 기르고 땅을 기름지게 하는 성스러움이다.

한인 사회를 맑고 깨끗하게 썩지 않게 하고 새로운 생명을 기르고 잉태하는 밝은 미래를 창출하기 위해 자리보존 내지 쟁탈전에서 한 걸음 물러나는 용단이 필요하다. 그 때 그 자리엔 내가 필요 했지만 지금의 그 자리엔 내가 아니라도 다른 사람이 더 잘 해낼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 때 그 시절은 추억에만 존재한다. 지금 이 시간도 흘러가면 그 때 그 시간이 된다. 물러나는 것이 아쉬워도 물처럼 흘려보내면 아름다운 어제가 된다.

사랑하는 그대여! 남은 숫자 세지 말고, 이름 석자에 목숨 걸지 말고, 가진 것 너무 움켜쥐지 말고, 나눠주는데 인색하지 말고, 떠나가는 사람 붙잡지 말고, 흔들려도, 누가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게 나무 가지라도 꼭 붙들고, 내 것이 아닌 것은 남의 것이라 믿고, 버리고 또 버리고 그래야 새 것으로 채울 있으므로, 꽉 잡은 생의 밧줄 조금 느슨하게 풀고, 아닌 것도 틀리다고 말하지 말고, 무거운 짐 끙끙거리며 혼자 지지 말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 지우고 또 지우고. 아까워도 내 자리 넘겨 주고, 속내 드러내다 왕따 당하지 말고, 원로라고 폼재지 말고, 충고나 조언하다 뺨 맞지 말고, 오르막길보다 내리막길 더 조심하고, 그 때 그 시절은 휘파람으로 날려보내고, 오늘을 비우고 내일 편안하게 지내기를. [윈드화랑대표•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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