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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늙어간다는 것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 옷깃을 세우고 집을 나섰다. 찬바람이 얼굴을 스치지만 정신이 번쩍드는 게 오히려 상쾌하다. 얼마 걷지 않아 내가 좋아하는 호숫가에 도착했다. 호수면은 잔잔한 물결을 더 이상 내지 않고 평온히 정지돼 있었다. 주변의 나무들은 제 잎을 다 떨구고 몇개의 마른 잎들만을 매달은 채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호수도 나무들도 계절에 순응하며 모습을 바꿔가고 있었다. 그곳에 나는 한동안 서있었다.

늙어간다는 것, 어쩌면 호수처럼 평정을 되찿아 고요해져 감이 아닐까? 나무들처럼 제 잎을 떨구고 나목이 되어 한겨울 찬바람을 견디어내는 과정이 아닐까? 생물학적으로 늙어간다는 것은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내지 못해 모든 기능이 떨어져서 활동의 양이 현격히 줄어들므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육체적으로 노쇠화 된다 하더라도 정신적으로 그 현상을 따르라는 법은 없다. 미국의 국민 화가 모지스 할머니는 78세에 붓을 잡아 101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1600점의 그림을 남겼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카드, 도자기, 우표에서까지 그의 작품을 친밀하게 접할 수 있다. 일본의 시바다 도요 할머니는 92세에 시를 쓰기 시작해 98세에 첫 시집 '약해지지마'로 발매 6개월만에 70만부를 돌파해 일본열도를 흔들었다.

늙는다는 것을 꼭 비관적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나를 돌아 보아 굳어진 감성의 몽우리에 다시 꽃 피울 수 있게 자신을 보담는 시간으로 삼아야 되기 때문이다.

찬바람에 유독 청청한 소나무의 솔잎들을 본다. 딱딱하고 큰 열매들을 떨구어내지만 그 잎은 오히려 곧고 푸르게 뻗어있다. 솔나무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 높고 더 힘차게 하늘을 향해 뻗어나간다.



화가는 연륜이 더할수록, 시인은 그 깊이가 깊어질수록 걸친 옷들을 벗어 내려놓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성경에 아브라함은 100세에 경수가 끊어진 그의 아내 사라를 통해 자녀를 보았다. 그 후 그의 자손들은 하늘의 별 만큼 바닷가의 모래만큼 셀 수 없이 번성했다. 벛나무 아래 하얀 눈 위, 각혈처럼 뿌려진 붉은 열매를 보며 잃어버린 지난날들을 내려놓는다. 혼돈스런 생각들을 지우고 나까지 내 발등 아래 내려놓을 때 늙어진다는 것에서 자유하게 될 것이다. 딱딱한 고목, 그 가지에서 붉은꽃이 피어날 봄을 향하여 앞으로 발을 뻗어 걸으면 될 일이다.[시카고 문인회장]

겨울 앞에 선다

잃어버린다는 의미
가슴 어딘가 꼭꼭 쟁여
솔잎 잔뜩 목을 움추린
찬 바람 겨울
그 푸른 정수리 고추서면
찿아 나서려
꽃이 진 자리 빨간 열매
하얀 눈 위 각혈처럼 뿌려져
꼭 지나온 후회 같아
겨울 앞에 선다

생각 몇 개를 지우며
너를 지운다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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